[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책을읽어주는시간이행복해요

입력 2009-03-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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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저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지난 밤 소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새벽녘에나 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눈을 떠보니 벽에 걸려 있는 시계가 정각 11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잠을 깨려고 얼른 창문을 열었는데,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습니다. 창문에 매달려 있는 빗방울들이 마냥 사랑스럽기만 했습니다. 제 볼을 스치며 떨어지는 차가운 빗방울도 있고, 아스팔트 위로 톡톡 타다닥 소리 내며 떨어지는 빗방울들도 있었습니다. 창 밖에 어떤 여학생이 차가워 보이는 허연 다리를 교복치마 밑으로 내놓고, 부지런히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저도 ‘얼른 서둘러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는 ‘기적의 도서관’으로 책 읽어주기 봉사활동을 나갑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MBC-TV의‘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이라는 시민단체와 함께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최초로, 기적의 도서관 1호로 지어진 곳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전용 도서관이고요, 저희 순천 시민들에겐 큰 자랑거리인 곳입니다. 어쨌든 그곳으로 봉사활동을 나가는데, 사실 봉사활동이라는 게 매일 즐겁게 나가는 건 아닙니다. 가끔 몸이 찌뿌듯하거나, 피곤할 때는 하루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약속한 거니까, 막중한 책임의식을 갖고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그 날도 도서관에 도착해서 아이들에게 읽어줄 세 권의 책을 고르는데,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선생님 책 읽어 줄 거죠?” 하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제가 고개를 끄덕였더니, “빨리 빨리 읽어주세요. 저는 책 읽어 주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하면서 눈을 반짝였습니다. 제가 책을 들고 이야기 방으로 들어가자, 한 명씩 한 명씩 아이들과 보호자분들이 함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요즘은 아이들보다도 그들의 보호자들이 더 열성적이고 적극적으로 제 얘기를 들어준답니다. 그 날 읽은 책은 로버트 먼치라는 아동문학가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주인공은 아기에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숱한 말썽과 장난으로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아들을 사랑하며, 잠자는 아들의 평온한 얼굴을 보고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내용입니다. 그 책은 저희 애들에게도 벌써 여러 번 읽어줬는데,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아이들 때문에 속상하고 슬플 때 평온히 잠자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한없이 용서하는 마음을 가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 책을 포함해 세 권의 책을 읽어주는 동안 저는 이야기 듣는 아이와 어른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림이 안 보인다며 투정하는 아이. 조용히 하고 선생님 책 읽어 주시는 거 잘 들으라고 하시는 어머니. 아이들보다도 더 흠뻑 빠지신 할머니. 저는 이 시간이 참 흐뭇하고 즐겁답니다. 제가 “우리 친구들 재미있었나요? 다음 주에 또 올 거죠?” 하면 언제나 거침없는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는데, 그 대답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랍니다. 비 오는 그 날, 그 날도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저는 오기를 잘 했다 생각하며 좋아진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우산을 펼쳐들어 머리 위에 큰 지붕을 만들고, 기분 좋게 걸어 나왔던 그 날, 그 날은 어디든 한없이 걷고 싶을 만큼 즐겁기만 했답니다. 전남 순천|오인선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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