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아뿔싸!짠순이로살아야하다니…

입력 2009-03-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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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별다른 약속이 없었던 저는 간만의 휴일을 만끽하며 늦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전화를 걸더니 동창회에 가야 한다면서 와서 조카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너무 귀찮았지만 언니가 섭섭하지 않게 용돈을 챙겨준다고 해서, 대충 옷을 입고 언니네로 갔습니다. 조카랑 좀 놀아주다가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이 녀석이 배고프다고 절 깨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일어나자마자 언니 집으로 온 터라 제대로 먹은 것도 없고 굶겼다간 또 무슨 소릴 들을지 모르니 밥을 챙겨주긴 해야 했습니다. 일단은 뭐 먹을 게 없나 싶어서 부엌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찬밥 한 그릇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밥하기가 왜 그렇게 귀찮던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조카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도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언니가 잘 안 사주는 피자가 먹고 싶다고 그랬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조카에게 크게 한 번 내야지 생각하고 생색을 내며 피자를 주문했습니다. 제가 먹고 싶었던 치킨도 같이 시켰습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고, 계산을 하려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아뿔싸! 이게 웬일이랍니까? 분명히 지갑을 챙겨 온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지갑이 없는 겁니다. 일단 급한 마음에 언니가 비상금을 감춰두는 부엌 찬장과 화장대 서랍을 살펴봤습니다. 그 어디에도 동전 한 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배달원은 빨리 계산해 달라고 재촉하는데, 돈은 없고 어찌나 난처하던지… 그 때 어린 조카가 제게 뭔가를 쑥 내밀었습니다. 그건 바로 조카의 보물 1호인 빨간 돼지저금통이었습니다. 그리곤 “이모, 이거로 계산해. 이거 내가 컴퓨터 사려고 모은 거야”라고 했습니다. 일단은 잘 됐다 싶어서 얼른 돼지 배를 가르고 돈을 꺼내려 했습니다. 그때 조카가 하는 말이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어. 이거로 계산하는 대신에 이모가 내 컴퓨터 사줘야 하는 거야. 알았지?”라고 제안했습니다. 일단은 계산이 급했기 때문에 알았다고 대답하고 돈을 썼는데, 조카가 뜨끈뜨끈한 피자와 치킨을 맛있게 먹은 후 컴퓨터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집에 돌아오니까 이 녀석이 쪼르르 달려가서는 “엄마, 이모가 나 컴퓨터 사준대∼ 우리 이모 정말 짱이야∼ 그치?” 이러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언니는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고 그저 절 보면서 정말 그런 약속을 했냐고, 철들었다고 그랬습니다. 뭐라 말 한마디 못하고, 어찌나 속이 쓰리던지… 그래도 저는 조카와 한 약속이기에, 이모 체면 좀 살려보려고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요즘은 짠순이로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돈 벌면 쓸 줄만 알았지 제대로 모아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돈 모으는 재미도 느끼고, 조카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좋은 이모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경기 광명|박은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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