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게임쇼에서 엿보는 일본 게임업계의 현실

입력 2010-09-17 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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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게임업계에서는 일본을 '갈라파고스' 군도로 비유하는 일이 종종 있다. 아마도 세계적인 추세나 정서에는 맞지 않는, 전혀 동떨어진 진화의 과정이나 결과가 곳곳에서 엿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 열리는 게임쇼인 도쿄(東京)게임쇼도 마찬가지다. 굳이 차이나조이나 지스타 같은 온라인 게임 중심의 행사와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독일의 GC, 미국의 E3와 비교해봐도 도쿄게임쇼의 위치는 명확하다. 도쿄게임쇼에는 다른 게임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극도의 '콘솔 고집주의'가 이면에 깔려있다.

당장 행사장에 들어가보니 화려한 그래픽을 뽐내는 콘솔 게임들이 사방에서 자신의 위용을 뽐낸다. 미소녀 매니아들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귀여운 여성 캐릭터가 힘든 줄 모르고 눈을 깜박이며 춤추고 있고, 행사장 정면에서는 파괴력 넘치는 무기를 든 전사가 몬스터들을 사냥하려고 채비를 하고 있다. 동작 인식형 센서를 탑재한 한 콘솔 게임기 부스에서는 사람들이 어릿광대 마냥 몸을 흔드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필자가 13년 전, 도쿄게임쇼가 처음 열렸을 때 보던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만 해도 도쿄게임쇼는 동경(憧憬)의 대상이었고, 전세계의 게임 트렌드를 엿보는 장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취재를 하던 애송이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도쿄게임쇼를 걱정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출품되는 게임의 상당수는 소수의 결집된 미소녀 매니아들을 타겟으로 하고 있었고, 많은 개발사들이 시리즈 게임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등장하는 물체를 마구 난도질하는 형태의 '무쌍' 형태의 게임이 여러 곳에 덧붙여져 흉물스럽게 또아리를 틀고 있기도 했다. 장르의 고착화와 미소녀 게임의 범람.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한 세대의 콘솔 게임기가 수명이 다해갈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 아니던가.

즉, 이번 도쿄게임쇼를 보는 시선에는 '너무나 재미있겠다''이런 것이 진짜 게임이구나' 같은 환호성 보다는 '일본 게임업계는 이대로 괜찮은가' 라는 우려의 느낌이 짙게 숨겨져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스퀘어에닉스의 회장인 와다 씨의 발언이다. "바뀌어야 한다, 온라인 게임의 노하우를 받아들여 해외로 나가야 한다." 일본에서 꽤나 영향력이 있는 인물인 그의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캡콤의 츠치모토 켄조 회장의 "일본 기업이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는 발언도 무겁게 일본 게임업계를 짓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게임쇼의 변화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도쿄게임쇼의 주최측은 CESA, 즉 콘슈머 협회이다. 콘솔을 위해 만들어진 협회가 주최하는 게임쇼는 앞으로도 콘솔 게임을 가득 머금고 항해할 것이다. 행사장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놓여진 모바일 관이나 브라우저 게임관은 어쩌면 CESA 입장에서 베풀어준 최소한의 관용일 지도 모른다.

또 하나 도쿄게임쇼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일본인 특유의 확인 주의다. 충분한 서류로 사전등록을 하고도 따로 프린트를 뽑아서 일일이 확인하는 불편함.(장담하건데, 도쿄게임쇼가 차이나조이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면 입장하는데 4시간은 걸릴 것이다) 날마다 입장표를 교환해야 하는 번거로움 또한 능률화에 관심이 없는 고지식한 답답함으로 밖에는 안 비춰진다.

원래 게임쇼란, 그곳에 부스를 차린 개발사들의 신작 게임들을 보는 자리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 개발사의 앞으로의 비전을 엿보는 자리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이틀째 행사장을 돌면서 아직까지 그러한 비전을 찾지 못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부스에, 많은 사람들이 신작 게임들을 즐기고 있지만 어째선지 애처로운 생각까지 든다.

커다란 덩치에 두꺼운 갑옷을 입고 기세등등한 채로 서 있지만, 갑옷 안에는 여리고 작은 벌거숭이 소년이 추워서 떨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 일본은 바뀌어야 한다.

모바일이든 온라인이든, 일본 특유의 진화라도 좋다. 내년이든 내 후년이든, 일본의 게임업계가 지금과 다른,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냈으면 한다. 차후에 도쿄게임쇼에서 과거의 '게임왕국'이었던 일본이, 그때의 위상으로 다시 한 번 내게 다가오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조학동 게임동아 기자 (igelau@gamedong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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