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까지만 해도 PC용 부품 시장에 한국 기업들이 제법 있었다. 국산 메인보드의 자존심이었던 석정전자, 그래픽카드 시장의 강자였던 가산전자 같은 기업이 대표적인 토종 PC용 부품 업체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PC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IMF 구제금융을 거치는 등의 고난이 닥치자 이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그리고 2014년 현재, 시장은 대만 및 중국 업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맥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비록 회사 규모가 작고 자금력도 충분하지 않지만 기술력과 아이디어, 그리고 의지로 뚝심 있게 시장 공략을 하고 있는 한국의 PC 부품 업체도 있다.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전문 벤처기업인 리뷰안테크(www.revuahn.com)가 대표적이다. SSD는 플래터(자기디스크) 기반의 저장장치인 기존의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와 달리 반도체(주로 플래시메모리)를 기반으로 한 저장매체로, 탑재 시 PC의 동작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최근 PC 부품시장이 하락세라고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SSD 분야는 예외다. 삼성전자는 올 한해 세계 SSD 시장이 30%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다만,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IT업체라면 SSD 시장에 관심이 많다. 삼성전자나 인텔, 도시바와 같은 대표기업들 외에 OCZ나 플랙스터, 크루셜 같은 중견 업체들도 이 시장에 다수 진출한 상태다. 반면, 리뷰안테크는 불과 2012년에 설립된 중소기업으로, 규모나 자금, 그리고 인지도 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하지만 이 회사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리뷰안테크 설립 이전부터 10여년간 SSD 개발에 매진했다는 안현철 대표(39세)의 입을 통해 그 자신감의 근거를 살펴봤다.
2002년, SSD라는 것을 처음 접한 충격
IT동아: 리뷰안테크를 설립하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간단한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안현철: 저는 전자공학 전공자이며 노트북 매니아이기도 했죠. 어떻게 하면 노트북 성능을 높일 수 있을지 여러 가지 튜닝을 하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그런데 2005년에 해외 모사에서 첫 출시된 2GB의 SSD를 처음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죠.
당시엔 SSD라는 용어도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았죠. 그런데 평소에 부팅에 1분 40초가 걸리던 노트북에 이를 장착하니 불과 20초만에 부팅을 끝내더군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분야에 투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뉴틸메카(Newtilmeka)'라는 SSD 개발업체를 세우고 2006년에 첫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지금 리뷰안테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죠.
내가 쓰고 싶은 SSD 만들기 위해 세운 리뷰안테크
IT동아: 2006년이면 SSD 시장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는데 시장 공략에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나요?
안현철: 유틸메카에서 처음 내놓은 제품은 노트북의 익스프레스 슬롯에 꽂아 쓰는 카드 형태의 제품이었습니다. 'MYSSD'라는 제품명의 16GB 제품이었죠. 소니와 같은 해외 기업에도 납품을 했으니 품질은 제법 괜찮았다고 자부합니다. 다만 생산이나 유통 등을 담당하는 협력업체와 조율이 쉽지 않아 사실 큰 돈은 벌지 못했죠. 그래서 오래가지 못해 영업을 중단했습니다. 이후 USB메모리 업체 등에서 제품 개발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나름의 히트작도 내놓았고요.
IT동아: 다른 업체에 몸담으며 성과를 거두었다고 들었는데 굳이 창업을 한 이유는?
안현철: 제가 한동안 다른 일을 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계속 SSD 사업을 꿈꾸고 제품 구상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업계 전반에 SSD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특히 SSD 사업은 대기업이나 어울리는 것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회사에 제안을 많이 했지만 먹히질 않았죠. 그래서 결국 2012년에 리뷰안테크를 세웠죠.
IT동아: 리뷰안테크라는 이름이 참 특이합니다. 뭔가 의미가 있나요?
안현철: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전 노트북 매니아이기도 했습니다. 매체나 블로그 등에 투고도 종종 했는데 그 때 썼던 닉네임이 '리뷰안'이었어요.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사 이름도 리뷰안테크가 된 것이죠. 좀 단순한 이유죠? 물론 제조사 이름치고는 좀 이상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긴 합니다.
10여년의 구상 끝에 내놓은 결과물들은 '별종'
IT동아: 리뷰안테크를 설립하고 어떤 제품을 내놓았습니까?
안현철: 리뷰안테크 설립 이전부터 10년 이상 여러 가지 구상을 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바로 USB 인터페이스의 외장형 SSD인 '워프 USB' 였습니다. 여기에 운영체제를 설치해 가지고 다니면 어디에 있는 PC이건 그 PC의 USB 포트에 꽂고 부팅만 하면 언제나 동일한 환경의 PC를 쓸 수 있죠. 특히 윈도8은 WTG(Windows To Go)라고 하여 이 기능을 정식 지원합니다. 사실 워프 USB가 그다지 폭발적으로 팔리진 않았지만 매니아들의 반응은 정말 좋았습니다.
IT동아: 리뷰안테크는 일반적인 SATA 형태의 제품이 아닌 특이한 SSD를 더 많이 내놓은 것 같습니다.
안현철: 네 맞습니다. 사실 이건 제가 리뷰안테크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고안하던 것들부터 먼저 개발하고자 했기 때문이죠. mSATA 규격의 초소형 SSD는 2010년 즈음부터 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실은 저희는 이미 2007년경에 mSATA SSD의 시제품을 만들어 두고 있었습니다. PCI익스프레스 방식의 SSD 역시 그때 고안했죠.
그리고 올해 초에 WD에서 SSD와 HDD를 합친 '듀얼드라이브'라는 개념의 제품을 출시했는데, 실은 이것 역시 리뷰안테크에서 2007년에 동일한 원리의 제품으로 특허를 취득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특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특허료를 내야 하는데 이를 하지 못해서 특허권이 취소되어 버렸죠. 조금 안타깝긴 합니다.
SATA 방식 일반 SSD를 가장 마지막에 내놓은 이유는
IT동아: 리뷰안테크는 시장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SATA 방식의 2.5인치 SSD를 최근에야 출시했습니다. 리뷰안 850X가 그 주인공인데요, 이렇게 출시가 늦어진 이유가 있습니까?
안현철: 사실 회사 내에서도 SATA방식의 SSD를 내놓자는 이야기는 이전부터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부러 출시하지 않았습니다. 본인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능과 가격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2013년에 SMI에서 우수한 성능의 SSD 컨트롤러를 내놓은 것을 보고 저도 SATA 방식의 2.5인치 SSD를 개발할 결심을 굳혔습니다. SMI의 컨트롤러와 인텔의 낸드플래시를 조합해 탄생한 리뷰안 850X는 성능뿐 아니라 가격 또한 만족스러운 제품입니다.
IT동아: 리뷰안 850X는 유명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대기업 제품들을 체치고 2위를 차지하는 등 요즘 시장 반응이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성능과 가격 외에 어떤 점이 이 제품의 강점일까요?
안현철: 저희는 정말 오랫동안 낸드플래시와 컨트롤러만 다뤘고 회로 설계의 노하우도 강하다고 자부합니다. 조합의 미를 안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일단 제가 좀 매니악 합니다. 이윤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제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했지요. 리뷰안 850X의 표면이 황금색인 것도 매니아 취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사실 주변에서 저에게 기업가 마인드가 좀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합니다.
200대 이상의 노트북 준비해 모든 고객의 상황에 철저 대처
IT동아: SSD는 제품 자체뿐 아니라 사후지원 역시 중요합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어려움이 있지 않나요?
안현철: 저는 항상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사장이 아니라 고객'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늘 말합니다. 그리고 늘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 응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지금 리뷰안테크의 서비스센터에는 200대가 넘는 노트북이 있어서 거의 모든 고객 사례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매우 드문 기종을 가지고 있는 고객이 서비스를 의뢰하면 동일한 기종의 노트북을 새로 사서라도 연구해서 해결을 해 드리고자 합니다. 대기업이나 단순한 유통사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4배 빠른 SSD, 그리고 SSD 속도의 HDD 준비 중
IT동아: 향후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제품은 무엇이 있습니까?
안현철: 현재 SATA3 인터페이스는 거의 속도의 한계에 달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RAID0 구성(복수의 저장장치를 조합해 성능을 높임) 기반의 데스크탑용 SSD를 개발, 빠르면 10월 중 선보일 예정입니다. 일반 제품의 4배에 달하는 2,000MB/s 가량의 속도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HDD에 SSD를 결합한 형태의 제품도 조만간 출시할 것입니다. 이 제품은 데이터 쓰기 속도나 용량은 기존의 HDD 수준이지만, 데이터 읽기나 4K 속도, 부팅 속도는 SSD 수준인 500MB/s를 냅니다. 테라급 용량의 SSD를 20만원 이하의 가격으로 쓴다는 느낌이겠죠. 기존 HDD에 달아 쓰는 애드온 형태의 제품이지만 일단 초반에는 HDD와 조합한 세트 제품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IT동아: 마지막으로 소비자들과 IT동아의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안현철: 대기업 상대로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형식적인 답변이 올 뿐이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의견을 주시면 반드시 다음 제품에 반영합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소통이 리뷰안테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리뷰안테크는 무조건 많이 팔기 위해서라기 보단 우리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열정적인 회사입니다. 중소기업이라 해서 편견을 가지지 말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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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