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시(아이비)’가 런던의 클럽 레드 랫에서 노래하고 있다. 루시는 지킬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지만 하이드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사진제공 | 오디컴퍼니)
사랑마저 사치였던 여인, 무대 위 존엄이 되다
하이드보다 더 선명한 인간의 얼굴, 루시
아이비의 목소리로 피어난 ‘새 인생’의 찬가
신이 되고 싶었던 지킬, 인간을 벗어나고 싶었던 하이드. 그리고 단 한 번만이라도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루시. 하이드보다 더 선명한 인간의 얼굴, 루시
아이비의 목소리로 피어난 ‘새 인생’의 찬가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선과 악의 대결이 도드라진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그 안엔 세상에 붙잡혀 끌려 다니는, 그러나 탈출을 간절히 희망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이름은 루시. 런던 클럽 레드 랫의 무용수. 사회의 밑바닥 인생에겐 사랑도 사치였다. 그는 사랑이 아닌 희망을 찾고 있었다.
루시의 삶은 고단하다. 그가 서 있는 무대 위는 화려하지만, 그 싸구려 빛은 루시의 속까지 비추진 못한다. 허다한 남자의 손길이 그를 스쳐가지만, 단 한 번도 진짜 인간의 온기를 경험해보지 못한 루시는 지킬 박사를 만나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존중받는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맛본다. 그 감정은 희망이 되고, 희망은 그를 조금씩, 그러나 확고하게 앞으로 밀어낸다. 무대 위에서 그는 더 이상 밑바닥 클럽 댄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한 존재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이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감정의 여정을 아이비는 잘 그려냈다. ‘루시’라는 이름 옆에 ‘아이비’라는 배우의 이름이 붙는 순간, 극의 온도가 달라짐을 느꼈다. 아이비는 노래로 연기를, 그것도 능숙하게 펼치는 배우가 됐다. 이런 고급진 느낌은 과거 최정원으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루시의 넘버들은 상당히 어렵다. 음역대가 넓고 굴곡이 큰 데다 감정적인 소모가 어마어마해 루시 배우들에겐 고난도의 스키 슬로프처럼 느껴질 것이다. ‘당신이라면(Someone Like You)’의 담담한 고백에서, 벼랑 끝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외치는 ‘시작해 새 인생(A New Life)’까지. 높은 음의 언덕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다가도 이내 감정의 뉘앙스를 살리며 부드럽게 내려온다. 거친 듯 유연하고, 절절하면서도 절제된 아이비의 노래는 확실히 관객의 눈은 물론 호흡마저 가져가는 마력이 있다.

루시의 넘버 ‘그의 눈에서(in his eyes)’를 부르고 있는 아이비. 사진제공 | 오디컴퍼니
루시의 비극은 그가 절정의 인생을 눈앞에 둔 순간에 파국을 맞는 데에 있다. 간절히 원했던, 희망을 품었던, 그리고 손에 막 그것을 쥐려는 ‘지금 이 순간’, 하이드는 그의 꿈을 비웃으며 그의 손을 펴버린다. 하지만 루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지킬의 감정을 움직였고, 하이드라는 괴물을 더욱 괴물답게 보이게 만들었으며, 관객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줬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 ‘대결(The Confrontation)’과 같은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명곡들이 퍼레이드를 벌이는 작품이다. 이 중에서 루시의 숨결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피우는 ‘시작해 새 인생’을 빼놓을 수 없다. 절규처럼 시작해 기도처럼 끝나는 이 노래를 듣고 있다보면 어쩐지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의 ‘겟세마네’처럼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새로운 삶을 꿈꾸는 루시의 ‘시작해 새 인생’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삶의 희망가이자 위로가이기도 하다.
한국 공연 20주년을 맞은 ‘지킬앤하이드’는 이번 시즌에서도 여전히 무대의 신화를 쓰고 있다. 그 신화의 한 복판에서, 루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지나쳤던 이들의 이름을 되새기게 만든다. 빛보다 먼저 사라지는 별똥별 같은 존재였지만, 루시의 이름과 그의 노래는 무대 위에서, 그리고 관객의 가슴 속에서 오래도록 반짝일 것이다.
희망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아이비의 ‘루시’를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희망’이라 읽고 있었다.
|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기간: 2024. 11 29~2025. 5. 18 공연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캐스팅 : 지킬/하이드(홍광호 전동석 김성철 최재림 신성록), 루시(윤공주 선민 김환희 린아 아이비), 엠마(조정은 최수진 손지수 이지혜), 어터슨(이희정 윤영석) |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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