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옥천매운족발의 반반메뉴. 매운족발과 보통족발이 반씩 나오지만 결국 먼저 없어지는 것은 늘 매운족발 쪽이다.        양형모 기자

창신동 옥천매운족발의 반반메뉴. 매운족발과 보통족발이 반씩 나오지만 결국 먼저 없어지는 것은 늘 매운족발 쪽이다. 양형모 기자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로 나와 골목으로 들어서면 기분부터 맵싸해진다. 전국 매운 족발의 성지, 창신동 매운족발을 먹기 위한 순례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가까워질수록 공기에 불향이 섞여 있다. 이 아름다운 향기의 진원지 중 하나. 오늘 방문할 옥천매운족발이다.

이곳은 창신동 매운족발의 오리지널리티를 지켜온 간판스타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10년 전 맛과 지금의 맛이 똑같다고 보증하고 있다. 매족 좀 먹어봤다는 단골들의 “창신동 매운족발의 시작은 옥천이었다”는 주장은 괜한 것이 아닐 것이다.

황금시간대의 웨이팅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사장님과 직원들의 ‘족발썰기 퍼포먼스’를 보고 있으면 줄도 시간도 같이 썰려 나가는 기분이 든다. 청양 고춧가루와 고추씨기름으로 완성된 특제 양념이 우려내는 향은 곧 혀가 경험하게 될 매운 천국의 예고편이다.
옥천매운족발의 입구에서 족발을 썰고 있는 모습

옥천매운족발의 입구에서 족발을 썰고 있는 모습

옥천매운족발 내부. 이곳은 방송에도 많이 소개됐다

옥천매운족발 내부. 이곳은 방송에도 많이 소개됐다


창신동 매운족발거리엔 옥천 외에도 다수의 족발가게가 문을 열고 있다. 가게마다 메뉴도 맛도 조금씩 차별화 되어 있지만 기본은 ‘창신 류(流)’를 벗어나지 않는다.
족발은 매일 새벽 들여오는 신선한 앞다리와 뒷다리로 준비하고 양파, 마늘, 생강, 감초, 월계수 잎 등의 재료를 넣어 푹 삶는다. 삶는 도중 소주와 사이다를 한 번 더 넣어 잡내를 제거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족발은 양념을 입힌 뒤 석쇠 위에서 한 번 더 굽는다. 불맛이 배어들면서 콧속까지 찌르고 들어오는 매운 향이 완성된다. 혀끝이 얼얼할 정도로 맵지만, 뒤로 갈수록 달큼한 맛이 감돈다. “하아, 하아” 혀를 빼물게 되지만 도저히 젓가락을 멈출 수 없다.

옥천매운족발에서 족발을 주문할 때, 일행 중 맵찔이가 있다면 반반 족발을 추천한다. 반은 매운족발, 반은 보통 족발이지만 결국 먹다 보면 매운 쪽이 먼저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1인 1족발을 외치는 ‘먹방러’가 아니라면, 세 명이 족발 한 접시로 충분히 만족할 정도의 넉넉한 양이다.

매운족발의 불길을 식혀주는 조연들도 기억해 두자. 먼저, 콩나물국. 매운 혀를 달래라고 내주는 국이지만 이게 신스틸러급 조연이다. 아삭아삭한 콩나물에 국물은 차갑고 짭짤하다. 국물 한입이면 다시 매운 전투의 장으로 달려갈 수 있게 된다. 이 콩나물국은 리필이 되니 한 그릇 더 먹자.

추천 메뉴가 더 있다. 계란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주문할 테지만 계란찜의 부드러운 식감, 고소한 맛이 족발의 풍미를 ‘확’ 끌어올려 준다.

옥천매운족발이 사랑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노포에서 경험하기 힘든 친절함과 세심함이다. 손님이 원하는 것은 물론 무엇을 원할 것인지를 환히 꿰뚫어 보고 있는 기분이다. 이곳의 따뜻함은 콩나물국, 계란찜과 함께 최고의 매운맛 중화제다.

10년이 지나도 같은 풍경, 쓰고 매운 세상을 향해 “내가 왔다. 눈 깔아라!” 외칠 수 있게 해주는 맛. 매운족발의 불향 속엔 진화도 퇴화도 거부하는 창신동의 시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