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연주하고 있는 첼리스트 허정인

어쩐 일인지 예술의전당 로비에 장날 같은 긴 줄이 섰다. “실례합니다”, “잠시만요”를 거듭하며 간신히 인파를 헤치고, 콘서트홀을 지나 목적지인 리사이틀홀로 간다.
첼리스트 허정인의 독주회.
극악스러울 정도로 좁은 좌석을 논외로 한다면, 나는 리사이틀홀을 꽤 좋아한다. 대학로 중극장의 재미를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인데, 심지어 사운드도 좋은 편. 운이 좋으면 연주자의 미세한 얼굴 근육 움직임, 활의 끊어진 털 하나하나까지 다 가시권에 들어온다.
이날 프로그램은 꽤 묵직하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2번, 멘델스존 소나타 2번, 라흐마니노프 g단조 소나타. 피아노는 전세윤이다.
세 작곡가는 모두 자신만의 정체성이 확실한 인물들. 한 마디로 ‘음악적 한 성깔’이 있는 양반들이다. 생긴 것만큼이나 음악적 색깔도 다른 이 세 작곡가의 작품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다.
기본적으로 연주자의 해석은 악보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악보에 꼼꼼히 잔소리해놓기는 베토벤 따라갈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그마저도 악보의 빈 곳이 우주처럼 넓은 것이다.
허정인의 이날 연주는 너무 재미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독주를 집중해서 보았다. 즐거운 장면에서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는데, 옆사람 눈에 좀 이상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악장이 끝날 때마다 열심히 박수를 치는 것으로 보아 나의 작은 기행(?) 정도는 이해해줄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티켓창구에서 무료로 준 프로그램북 첫 장을 열면 허정인이 직접 적은 ‘인연’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그는 독일 유학 시절, 자신을 가족처럼 돌봐준 게오르기아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적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라이프치히로 향하는 마지막 기차를 기다리던 중 처음 만난 할머니와의 짧은 인사가 평생의 인연이 됐고, 그 인연은 공부, 생활, 음악 모두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됐다고 회고했다.

허정인(가운데)과 게오르기아 할머니, 휴 할아버지
매년 여름마다 찾아갔던 따뜻한 집, 매주 서로의 집을 오가며 나누었던 커피와 구운 케이크, 근교 여행. 게오르기아 할머니와 휴 할아버지는 허정인의 모든 연주회를 찾아 격려와 사랑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 허정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정하기도 했다. 허정인은 “이번 리사이틀은 할머니와 함께 한 추억이 깃든 곡들로 구성했다”고 했다. 이날의 연주회는 게오르기아 할머니를 향한 헌정의 무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2번(Op.5)은 2개 악장으로 되어 있어 구조는 심플하지만 그 안의 감정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첫 악장은 확신하지 못하는 듯 머뭇거리다가도 이내 격렬해지고, 2악장 론도는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 박동처럼 뛴다.
이어진 멘델스존 소나타 2번(Op.58)은 정반대의 세계다. 특히 2악장 스케르초는 멘델스존 특유의 투명한 질감이 물방울처럼 흩어진다. 허정인의 첼로는 이 투명함을 촉감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멘델스존의 노래는 마치 게오르기아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들리기도 했다.
마지막 라흐마니노프 g단조 소나타(Op.19)는 말 그대로 ‘감정의 대작’. 러시아의 어둡고 깊은 정서가 첼로와 피아노 사운드에 진득하게 녹아 붙어 있다. 이 작품은 연주자가 체력, 감정, 집중력 어느 하나라도 흔들리면 전체가 무너진다.
허정인의 첼로는 라흐마니노프가 쏟아낸 급류에 휘말리지 않고 두 발로 굳건하게 섰다. 전세윤의 피아노도 투구를 고쳐쓰고는 불꽃같은 투지로 첼로의 뒤를 따라왔다. 멋진 듀오였다.


나는 허정인씨의 첼로 톤을 꽤 좋아하고 있는데, 그 몽글몽글한 소리가 마음까지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것이다. 엉뚱한 비유지만, 그의 첼로에서는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톤 냄새가 난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지혜로운 사운드다. 물론 좋은 악기를 사용하고 있겠지만, 전적으로 악기 덕만은 아닐 것이다.
세 작품을 잇달아 듣고나니 엉뚱한 상상력이 가동되었다. 세 작곡가가 늦은 시간 술집에서 한 잔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는데, 대충 이런 것이다.
“니들이 인생을 알아? 산다는 건 투쟁이라고!”하고 베토벤이 거칠게 맥주잔을 탁자에 내려놓는데, 그 옆자리의 멘델스존은 듣는 둥 마는 둥 “인생은 아름다워”를 흥얼거린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술잔을 음울한 눈으로 내려다보면서 혼잣말을 한다. “삶은 긴 마라톤이더군요.”
허정인의 첼로는 이 세 사람의 인생론을 하나로 엮어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삶은 무겁고, 아름답고, 길다. 그 모든 것을 담아낸 밤이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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