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최다패 위기에 몰렸다가 국내 최다승에 도전하고 있는 KT 엄상백. 사진제공|KT 위즈
KT 위즈 엄상백(28)은 4월까지 7경기에서만 6패(1승)를 떠안았다. 이 기간 리그에서 패전이 가장 많았다. 투구 컨디션이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았지만, 야수 지원 또한 몹시 저조했다. 당시 수비효율 최하위(0.638)에 머문 KT 야수진은 그에게 경기당 1.57점(최소 4위)밖에 지원해주지 못했다. 더는 승패만으로 투수를 평가하는 시대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부진했든 팀이 자신을 돕지 못했든, 프리에이전트(FA)를 앞두고 리그 최다패 꼬리표가 붙는 게 결코 달가울 리 없었다.
●신뢰
올 시즌 적응할 게 많았다. 자동투구판정 시스템(ABS)을 눈에 익히고 피치클록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투구에 적잖은 영향이 있었다. 이에 시즌 초반 꽤 흔들렸다. 그러나 이강철 KT 감독은 “지금 (엄)상백이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다. 구위는 여전하다”며 신뢰를 보냈다. 대개 좋지 않은 결과가 잇따르는 경우 생활에 변화를 주는 투수 또한 적지 않은데, 엄상백은 그 신뢰 덕분에 등판 루틴을 꾸준히 지키며 구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신뢰가 가장 돋보인 시기는 5월이다. 엄상백은 오른 어깨가 다소 무겁게 느껴져 이 감독에게 한 차례 휴식을 요청했다. 선발진의 사정이 좋진 않았으나, 이 감독은 그를 1군 엔트리에서 말소하고 열흘 동안 쉴 수 있게 배려했다. 엄상백은 복귀 후 10경기 중 절반을 퀄리티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로 장식하며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말소 전에도 구위는 올라오고 있었지만, 어깨를 쉬게 한 뒤 제대로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팀에도 득이 된 선택을 (감독님이) 내려주신 것 같아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KT 엄상백은 올 시즌 9이닝당 탈삼진 1위를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KT 위즈
●닥터 K
5월을 기점으로 많은 게 달라졌다. 엄상백은 전매특허인 탈삼진 능력을 앞세워 스스로 가치를 높이기 시작했다. 5월 이후 더욱 분발해 올 시즌 9이닝당 탈삼진은 10.16개로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26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선 7이닝 동안 삼진 9개를 솎아내며 팀의 공동 4위 등극에 큰 힘을 보탰다. 엄상백은 현재 탈삼진 123개로 외국인투수 카일 하트(NC 다이노스·134개)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동료들도 그를 돕고 나섰다. 4월까지 저조했던 경기당 득점지원이 5월 이후 4.00점으로 올랐다. 이 기간 13경기에서 거둔 8승(1패)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제는 국내투수 최다승도 보인다.
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