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발을 앞세워 득점을 창출해내는 롯데 황성빈(왼쪽)과 장타력으로 가치를 높이고 있는 NC 외국인타자 맷 데이비슨. 스포츠동아DB
미국의 야구통계학자 빌 제임스가 고안한 RC(Runs Created)는 타자의 득점력을 예측하기 좋은 지표 중 하나다. 우리말로 득점창출능력이다. 지금은 계산법이 꽤 복잡해졌지만, 당초 제임스는 출루율과 총 루타수를 곱한 값을 RC로 정의하기도 했다. 득점은 곧 출루와 진루의 싸움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RC/27로는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 한 타자가 아웃카운트 27개(9이닝)를 책임진다면 몇 점을 낼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어서다.
●황성빈 9명 vs 데이비슨 9명
한번에 남들보다 더 많은 베이스를 밟으려면 힘이 세거나 발이 빨라야 한다. 35홈런으로 올 시즌 홈런 부문 1위에 올라있는 맷 데이비슨(33·NC 다이노스)처럼 장타로 많은 루타수를 기록한다면 득점창출력도 좋아질 수 있다. 반대로 황성빈(27·롯데 자이언츠)처럼 도루(40개·3위) 능력과 단타에도 두세 베이스를 뛸 수 있는 주루 센스를 지닌 선수도 득점력이 우수한 선수로 평가된다. 실제로 황성빈이 주루 기회가 주어진 모든 출루 상황에서 득점에 성공한 비율은 57%로 매우 높다. 규정타석의 70% 이상을 채운 선수 중에선 1위다.
RC/27로 1번부터 9번타순까지 데이비슨, 황성빈으로 꾸린 팀이 맞붙는 상황을 가정하면 꽤 흥미롭다. 둘은 정반대의 유형이지만, 지표상으로 데이비슨(7.74)과 황성빈(6.98)이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구간을 나눠 비교하면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도 보인다. 전반기에는 황성빈(8.81)이 데이비슨(7.71)보다 득점창출력에선 근소하게 앞섰다. 다만 7월 이후에만 홈런 10개를 터트리며 타격감을 끌어올린 데이비슨과 견줘 황성빈의 7월 타격 사이클은 내려갔다. 그러나 8월로 범위를 좁히면 되살아난 황성빈(14.89)과 타격감을 유지한 데이비슨(10.02) 모두 뛰어났다.
올 시즌 최고의 득점창출력을 보여주고 있는 KIA 김도영(왼쪽)과 KT 외국인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 스포츠동아DB
●김도영 vs 로하스
올 시즌 최정상급 득점창출력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는 김도영(21·KIA 타이거즈)과 외국인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34·KT 위즈)다. 둘의 경쟁은 흥미로운 비교 주제가 되기에는 너무도 치열하다. 호타준족 김도영은 빠른 발과 힘, 올 시즌 리드오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로하스는 힘과 선구안을 앞세운 출루 능력으로 뛰어난 득점창출력을 보여주고 있다. 규정타석을 채운 리그 전체 타자 중에서도 김도영(11.30)과 로하스(10.16)만이 두 자릿수 RC/27을 기록 중이다. 라인업의 9명을 모두 이들로 채운다면 경기당 두 자릿수 득점을 너끈히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