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의 눈을 가졌다는 이영구가 대국장으로 들어섰다.
평소와는 달리 사뭇 긴장한 얼굴이다. 먼저 도착한 윤찬희는 묵묵히 바둑판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영구를 보고는 고개를 숙여 보인다.
이영구로선 본선 첫 대국이다. 그가 속한 조는 4개 조 중 D조.
이세돌·이창호·박영훈과 같은 절대 강자가 없기에 다행이라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고만고만한 이들로 짜여진 만큼 한 판 한 판 지옥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돌을 가리니 이영구가 흑번이다. 마음이 웃는다. 프로에게 흑은 ‘좋은 예감’이다.
초반은 평이하게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실전> 흑1로 다가선 것은 당연. 이 한 수를 위해 흑은 좌상의 귀를 백에게 내어주고 벽을 쌓았다.
백2는 협공과 굳힘을 겸하는 수이다. 그런데 요즘은 <해설1> 백1로 툭 뛰어나가는 수가 유행이다. 이렇게 되면 흑은 백이 손을 뺀 2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물 흐르는 듯한 수순이다.
흑6까지, 프로의 바둑에서 자주 보이는 포석이다.
그림을 한 장 더 보여드린다.
<해설2>처럼 흑이 2로 벌렸을(또는 걸쳤을) 때 백이 3으로 모자를 푹 씌우는 수. <해설1>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 수순의 하이라이트는 흑6으로 움츠린 수이다.
기억해 두시길.
<실전> 백4에 흑은 5로 강하게 두점머리를 두들겼다. 백6에는 다시 한 번 흑7 강타! 록키의 주먹이 연달아 두 번 터졌다.
일단 보기에 시원하다.
이영구의 둥근 눈이 호랑이의 그것처럼 빛을 내기 시작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