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두터움이숨을쉰다

입력 2008-07-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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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을 바라보듯, 조훈현은 그렇게 반상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아름답군.’ 드넓은 평원 위로 흰 눈과 검은 비가 뿌려진다. 바둑의 서장은 늘 그렇듯 아름다웠다. 비록 전장의 운명을 타고난 곳이지만, 바둑판을 바라볼 때면 그는 늘 아름답다는 생각을 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그랬다. 일생을 바둑만 두고 살았다. 그래도 여전히 바둑이 좋고, 승부가 즐겁다. 때로는 스스로 돌아보아도 신기할 정도였다. 질릴 때도 되었는데. 약해질 때도 되었는데. ‘슬슬 시작해볼까?’ 조훈현이 흑돌 하나를 들어 <실전> 1에 가져다 놓았다. 물론 백은 두 말없이 백2로 잇는다. 이래놓고 흑3. 빳빳한 수다. <해설1> 흑1로 툭 뛰는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백은 2로 붙여 도강을 준비한다. 이 변화의 결말은 어떨까? ‘쯧! 글러 먹었지. 흑이 모처럼 바깥을 둘러친 우상의 흑▲가 쑥스러워진다. 이건 흑돌의 체면이 말이 아니로군.’ <실전> 흑3은 반대로 우상 흑▲ 두 점을 의식한 수이다. 이렇게 해 놓고 좌변의 백 한 점을 노린다. 흑의 마음을 백이 모를 리 없다. 얌전히 백4로 두 칸을 벌려 안정을 취해놓는다. 백12·14가 강지성다운 우직한 수이다. 그리고 좋은 수이다. 보통이라면 <해설2> 백1로 잇는 것. 이게 정석이다. 그런데 흑4로 막히면 흑의 두터움이 숨을 쉬게 된다. 상대가 두터워지면 이쪽은 엷어진다. 엷어지면 공격을 당한다. 공격을 당하면 주도권을 잃게 된다. 강지성이 슬쩍 눈을 들어 상대를 보았다. ‘전신(戰神)’이라 불린 사나이. 조훈현은 여전히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거대한 벽이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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