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죽는놈사는놈행복한놈

입력 2008-08-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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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죽음뒤소각장행,승용마로제2전성기,은퇴한뒤씨수마대접
경주마들의 최후는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행복한 말로는 현역시절에 화려한 성적을 거두고 은퇴 후 씨수말로 활동하며 수많은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승용마로 용도가 전환되어 일반 사람들을 태우며 느긋하게 말년을 보내는 것. 최악은 조용히 소각장으로 실려가 한 줌의 재로 되는 것이다. ‘은빛여왕’ ‘포암산’ ‘과천대로’ ‘나주산성’ ‘파워플러스’ ‘캐슬록’… 모두가 팬들의 함성과 성원을 받으며 서울경마공원 주로를 질주했던 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지만, 경주마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남길 뿐이다. 말 소각장은 경마공원 북문 입구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평소에는 철문이 굳게 닫혀 있지만 불운한 죽음을 맞이한 경주마가 찾아오면 엄숙하게 그 시신을 받아들인다. 30평 남짓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는 커다란 소각로가 자리 잡고 있다. 소각로 내부는 섭씨 1000도의 열기를 견디는 내화벽돌이 발라져 있고 소각로 외벽에는 화룡처럼 불꽃을 내뿜는 가스보일러가 박혀 있다. 경주마가 경마공원 안에서 죽게 되면 그 시신을 말 소각장 안으로 옮겨 그 자리에서 부검을 실시한다. 부검이 끝나면 호이스트(소형 기중기)로 무거운 말 시신을 들어올려 소각대 위에 올려놓는다. 소각로는 한 번에 한 마리밖에 처리할 수 없고 말 한 마리를 태우는데 4시간 정도가 걸린다. 8년 동안 말 소각장에서 일하고 있는 환경관리업체의 박광철(53)과장은 작년 한 해만 56마리의 말을 태웠다. 보통 20두에서 30두 정도가 경마장에서 죽는데, 지난해는 유난히도 말들이 많이 죽었다. 덕분에 박 과장은 그 어느 해보다도 ‘뜨거운’ 한 해를 보냈다. 그는 소각장에 실려 오는 말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도 단 한 마리 기억하는 말이 있다. 바로 경마영화 ‘각설탕’에 출연했던 ‘천둥’이라는 말이다. 영화배우 임수정이 여성기수로 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이 영화에서 ‘천둥’은 여주인공 시은과 애틋한 정을 나누는 경주마로 출연했다. 영화출연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던 ‘천둥’이는 영화가 개봉한 다음 해에 급작스러운 배앓이로 죽고 말았다. 보통 말을 소각하고 나온 재는 커다란 통에 보관하다가 90일내에 매립지로 옮긴다. 하지만 ‘천둥’은 마사회 측에서 도자기로 만든 유골함까지 가져와서 고이 모셔갔다. 그가 ‘천둥’이를 태운 날 집에 가니 마침 ‘천둥’이가 출연했던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자꾸 눈물이 나서 영화를 끝까지 볼 수가 없었어요.” 서울경마공원 내에는 ‘마혼비(馬魂碑)’라는 커다란 비석이 있다. 경마공원에서 삶을 마감한 경주마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세운 것이다. 마혼비 앞에서는 매년 경마의 날을 전후하여 말 위령제가 열린다. 비명횡사한 말들의 혼령을 달래어 경마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날은 마혼비 앞에 마사회와 경마 유관단체 관계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제사상을 차려놓고 제문까지 읽는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달리는 운명을 타고나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간 말들이여. 부디 하늘에선 ‘천마’의 운명을 부여받아 구름을 주로삼아 힘차게 달리고 있길. 양형모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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