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익숙함’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음악, 새로운 인물에 대한 외면은 낯섬에 대한 과잉 반응에 다름 아니다.
시선을 고정하고, 마음을 조금만 열면 드넓은 세상이 거기 놓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창문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면 창틀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창을 열고 머리를 조금만 내밀어 보자. 신선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여보자. 그 동안 거꾸로 나를 외면했던 세상이 나를 향해 윙크를 보내올지 모른다.
피아니스트 시몬 트릅체스키(30)는 발음부터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낯설기 짝이 없는 마케도니아 출신의 피아니스트다.
하지만 세계 음악평단의 평가는 다르다. 이 젊은 피아니스트에 쏟아지는 찬사는 주목할 만하다.
23세에 출반한 2002년 데뷔 음반은 그라모폰의 ‘올해의 데뷔 앨범’과 ‘에디터스 초이스’에 선정됐다. 이어진 라흐마니노프, 쇼팽, 드뷔시 등도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다.
어쩐 일인지 그라모폰과 상반된 평가를 내놓기 일쑤였던 BBC뮤직매거진 역시 그의 음반에 별 다섯 개를 부여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한 평론가는 트릅체스키의 쇼팽 스케르초에 대해 “페라이어나 지메르만도 따라오기 힘들 것”이라는 과격한(?) 평을 내놓았다.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조프리 노리스는 연초에 발매된 음반을 두고 ‘이미 올해의 음반’이라 선언했다.
그라모폰의 까다로운 비평가 브라이스 모리슨은 “트릅체스키의 새로운 음반을 고대하고 있다. 이번엔 독주 음반이 아닌 협주곡이었으면 좋겠다”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모리슨은 한국의 음악팬들이 많이 부러울 것이다. 트릅체스키가 4월 29일 예술의전당에서 서울시향과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말이다.
트릅체스키의 이번 협연은 서울시향의 2009년 ‘명협주곡 시리즈’ 제2탄이다. 시리즈의 첫 무대는 지난 3월 15일 ‘첼로의 요정’ 솔 가베타의 엘가 첼로협주곡이었다.
그리그의 협주곡은 음악팬들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열렬히 사랑받는 불멸의 레퍼토리다. 피아노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연주될 이 곡은 슈만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어 더욱 흥미를 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서두. 그리고 1악장의 지극히 ‘리스트적인’ 카덴차를 들어보라!
트릅체스키와 호흡을 맞출 지휘자는 핀란드 출신의 피에타리 인키넨이다. 트릅체스키보다 한 살 어리니 올해 나이 29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로 활동하며 무럭무럭 역량을 키워 가고 있는 미래의 거장이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시벨리우스의 5번 교향곡을 무대에 올린다.
한 가지 더. 연주회의 몸풀기는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작곡가 더글러스 릴번의 ‘아오테아로아’ 서곡이다. 영국에서 본 윌리엄즈를 사사한 릴번이 그려낼 뉴질랜드의 자연이 귀를 거쳐 눈앞에 선연히 펼쳐지는 신비를 맛볼 기회다.
4월29일(수) 8시|예술의전당 콘서트홀|문의 서울시향 02-3700-6300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