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맛 나는 록, 초코바나나 맛 스토리 …뮤지컬 트레이스유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입력 2023-08-09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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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음악없이 사는 건, 미친 짓이다.”
마니아의, 마니아에 의한, 마니아를 위한 작품. 트레이스유.

보여줄 게 딱히 ‘록’ 밖에 없던 많은 록 뮤지컬들이 떠오른다. 이 작품은 록 뮤지컬을 표방하지만, 이야기의 힘이 우락부락하다.
본하, 우빈 두 남자가 등장하는 작품이건만 10주년을 맞아 과감하게 두 명의 여성 배우에게 두 남자를 맡겼다. 그 결과 트레이스유의 ‘다른 맛’ 버전은 상당히 매워졌다.

이 작품 특유의, 구석구석 열어놓은 구조가 시종일관 객석을 긴장하게 만든다. 넘버의 가사 하나, 대사 하나가 록 음악의 시퍼런 혈관을 타고 결말의 반전을 향해 질주한다. 롤러코스터를 거꾸로 타는 듯한 쾌감이 제대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어둡고 작은 창고 같은 공간을 벗어나지 않지만, 그 의도된 폐쇄감은 관객 역시 극으로부터 단 한 순간도 탈출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놓을 만큼 강력하다.

무대 사이드에 세워놓은 가늘고 긴, 두 대의 스크린은 활용도가 높다. 스크린에는 본하, 우빈의 노래할 때 모습이 비추어지고는 하는데 본하와 우빈이 다르다. 특히 전반부에서는 정상적인 우빈과 달리 본하의 영상은 팝아트를 보는 듯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다. 흥미로운 떡밥이다. 이 작품은 200% 작가가 결말부터 써놓았을 것이다.

우빈과 본하의 대사는 짧지만 더 없이 강력한 결말의 장면을 위해 잘게 쪼개져 곳곳에 뿌려져 있다. 이 경우 각 장면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용되느냐가 관건. 윤혜선 작가의 솜씨는 대단히 세련되어 있다.

선우와 김려원의 ‘매운 맛’이 눈과 귀에 짝짝 들러붙는다.

김려원


김려원은 헤드윅, 리지, 식스더뮤지컬 등에서 입증한 바와 같이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보컬력의 보유자.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음원, 음반을 선보여 온 김려원은 트레이스유에서도 록과 록 아닌 록을 자유롭게 오가는 기량을 보여준다.

그나저나 선우란 배우에게 이런 중성적인 매력이 있었던가. 어쩐지 흑화된 미소년의 이미지. 한웅큼 감춘 비밀을 시니컬한 미소에 묻은 미스터리한 인물. ‘선우의 재발견’이라기보다는 선우 속의 선우 발굴, 또는 대공개쯤이랄까.

선우 우빈과 김려원 본하의 중간적 컬러 ‘브로맨스’가 공연의 재미 중 하나다. 이는 확실히 남자 배우들의 무대에서는 맡기 힘든 분위기일 것이다.

좋은 넘버들이 많지만 극을 열고 닫는 ‘트레이스유’와 커튼콜 곡이기도 한 ‘또라이’는 확고한 킬러 곡들이다. 이번 6연에 추가된 마지막 넘버 ‘네버 엔딩’은 관객의 떼창으로 최종 완성된다.

PS. (한 줄 감상) 트레이스유를 보고 나서 확신했다. 음악없이 사는 건 미친 짓이다. 음악없는 삶이란 새벽 4시 스타벅스에서 딸기맛이 나는 초코바나나 우유를 주문하는 것과 다를 게 없을 테니까.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더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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