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지만 힘이 셌던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 [일일공프로젝트]

입력 2024-02-06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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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2022년 이정열-이아진 친부녀 배우의 조합으로 보았던 작품이다.

암으로 죽어가는 무심하고 괴팍한 경상도 아빠(부산이다)와 어린 시절, 엄마와 자신을 버린 아빠에 대한 미움을 키우며 동화작가로 힘겹게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딸.

딱히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캐릭터들을 여기저기 툭툭 던져 넣고 직조하니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트렌디한 뮤지컬이 되었다. 극작 강보영, 각색 김선영의 솜씨다.

이주희가 작곡한 음악은 울림이 작지 않다. 19세 시절의 병삼(아빠)이 쓴 시 ‘밤의 한숨’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넘버다. 가사도 좋지만 멜로디도 마음에 ‘슥’하고 스며든다. 마치 김광석의 노래처럼 들린다.

이번 시즌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있는 곳으로 “예술의전당에 이런 공연장이 있었나?”싶은 사람들도 틀림없이 있을 것 같다. 아담하고 조용한, 근사한 장소다.

이번에는 성기윤 ‘병삼(아빠)’, 이휴 ‘주영(딸)’ 조합으로 보았다. 그동안 다수의 작품에서 성기윤의 연기를 보며 ‘성우급 대사 전달력을 보유한 배우’라고 생각해 왔는데, 딸로 나온 이휴도 만만치 않았다. 대사와 노래톤이 동일한데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다트를 힘껏 던지는 것 같다. 한 방 한 방이 팍팍 날아와 박히는데,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시원하다.


성기윤은 삶에 찌들어 죽어가는 현재의 병삼과 시를 좋아하던 10대의 병삼,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꿈을 접고 공장으로 돈을 벌러 가는 병삼을 연기했다. 눈여겨볼 것은 이 배우가 시간의 차이를 둔 두 병삼을 단순히 대립 관계에 놓아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기윤은 현재의 병삼 안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어린 시절의 병삼을 끌어내 과거의 병삼과 병치함으로써 병삼이라는 인물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내는 한편 조금씩 아빠를 향해 다가가는 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덕분에 모처럼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 맛’을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장르 특성상 연극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자주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 더욱 그러했다.

병삼과 주영의 마지막 벤치 씬은 잔잔하지만 힘이 세다. 병삼이 마지막 길을 떠나고, 수많이 나비 떼가 흩어지는 영상은 2년 만에 다시 봐도 마음이 뜨거워진다. 병삼이 무심하게 던지는 마지막 대사 “찾았다”는 참 멀리 가는 여운의 향이다.


멀티역인 체셔 고양이, 시계토끼, 도도새는 낯이 익다 싶더니 2년 전 캐스팅 그대로다. 정현우, 홍준기, 박혜원의 연기와 노래도 좋지만 활기 넘치는 안무와 움직임도 이 작품의 엔진을 힘차게 돌린다. 프로그램북을 보니 이현정 안무감독의 이름이 보인다.

성기윤은 “꼭 내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이 더 발전되었으면 좋겠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보고 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는 작품이 간혹 있기 마련인데,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2년 전에도, 지금도 그렇다.

이 뮤지컬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죽기 전 병삼이 주영에게 건네는 말이다.

“미안하다.”
“뭐가 미안한데?”
“아빠가 아빠여서.”

양형모 스포츠동아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주)다아트/다아트크리에이티브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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