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전기차 5만 대 시대…도심 충전소·수소공급망 안정화 ‘시급’

현대차 넥쏘를 비롯한 국내 수소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가 올해 5만 대 돌파를 앞두고 있다. 수소전기차 대중화를 위해서는 충전 인프라 확충과 수소 공급망 안정화, 국가 차원의 체계적 지원이 필수 과제다. 사진은 현대차 ‘디 올 뉴 넥쏘’. 사진제공 ｜현대차

국내 수소전기차 보급 대수가 조만간 5만 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수소경제로 가는 본격적인 전환점이자, 미래 친환경 모빌리티 시장 주도권을 가늠할 중대한 분기점이다. 그러나 수소전기차의 확산세가 지속되려면 충전 인프라와 수소 공급망의 안정적 구축이 선결돼야 한다. 현재 도심 충전소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수소 유통 역시 민간 중심으로 불안정하게 운영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수소 공급과 인프라를 통합 관리하며 시장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이 수소전기차 대중화를 넘어 수소경제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도심 충전소 확충과 국가 차원의 에너지 통합관리 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수소전기차 5만 대 시대 본격 진입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수소전기차 누적 보급대수는 3만 9216대를 기록했다. 승용 모델인 넥쏘가 중심이 된 승용 수소전기차가 3만 7227대, 수소전기버스가 1939대, 수소전기트럭이 50대다. 정부는 올해 1만 3000대 분량의 구매보조금을 확정했으며, 현대차 ‘디 올 뉴 넥쏘’출시까지 예정돼 있어 연내 5만 대 돌파가 확실시된다.

수소전기차 보급은 2018년 ‘넥쏘’ 출시를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2년 만에 1만 대, 이후 2023년 3만 대를 넘어서는 등 보급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수소버스와 수소트럭 등 상용차 부문에서도 수소전기차의 입지가 확장되고 있다. 현대차는 인천, 전북, 충남, 울산 등 주요 광역자치단체와 협력해 수소전기버스 보급을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 시장을 겨냥해 수소전기 대형트럭 수출도 본격화했다. 한편,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올해부터 수소전기차 통계를 별도로 집계할 예정이어서, 글로벌 수소차 시장의 성장세도 더욱 명확히 드러날 전망이다.

● 도심 충전소 부족 심각
수소전기차 보급이 늘어나고 있지만, 충전 인프라 부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현재 전국 수소충전소는 218개소에 불과하며, 수도권과 주요 도심 지역의 충전소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은 여의도, 양재, 강동 등 9곳에 충전소가 있지만 이용자 증가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수소전기차가 대중교통과 통근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내연기관차처럼 일상적 운행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도심 곳곳에 충전소를 설치하고, 접근성과 편의성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최근 현대차가 고압 이동형 수소충전소 개발을 완료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지만, 민간 충전사업자들이 도심 내 부지를 확보하고 경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세제혜택 등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

수소산업 전문가들은 “전국 관공서와 공공기관에 수소충전소를 우선 설치하면 도심 충전소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충전 인프라가 늘어나면 충전 편의성은 물론, 충전사업자의 수익성도 개선되어 수소전기차 생태계가 선순환 구조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가 차원의 리더십 필요
충전 인프라와 함께 시급한 과제가 바로 수소공급망 안정화다. 수소 생산부터 수송, 저장, 유통까지 공급 전 과정에 걸친 체계적 관리 없이는 수소전기차 대중화가 어렵다. 현재는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석유관리원, 한국가스공사 등이 각기 공급망 일부를 담당하고 있지만, 가격 변동성과 공급 불안정성을 통제할 수 있는 통합 전담기관은 없는 상황이다.

전기와 도시가스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이 수급과 가격을 조정하며 시장 안정을 꾀하고 있다. 반면, 수소는 민간 비중이 높아 외부 충격에 취약하고 가격 급등 가능성도 상존한다. 전문가들은 “수소공급망이 불안정하면 수소 가격이 급등하고, 이는 수소전기차 운행비용 증가로 이어져 시장 확산에 치명타가 된다”고 경고한다.

세계 주요국은 수소를 미래 에너지 핵심축으로 삼고 국가 차원에서 공급망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산업성 산하 자원에너지청이 수소정책을 총괄하며, 민관 합작기구 ‘JHyM’을 통해 충전소 건설과 운영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미국은 에너지부(DOE)가 ‘국가 청정수소 전략 및 로드맵’을 수립하고 7개의 ‘H2허브’ 프로젝트에 70억 달러를 투입했다. 중국 역시 지난해 에너지법 개정을 통해 수소를 국가 에너지 체계에 공식 편입했다.

국내에서도 수소공급망 통합 관리를 위한 전담기관 신설이 필요하다. 산업계 관계자는 “구매 보조금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충전인프라 구축, 수소 가격 안정화 등 이용자 총보유비용(TCO)을 낮추는 통합 지원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장기 수소경제 비전 아래 수소 공급과 가격을 총괄하는 국가 조직이 신속히 세워져야 수소전기차 시장이 지속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수소전기차 5만 대 시대는 단순한 양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수소사회로 가는 첫 번째 분기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급 대수만 늘어난다고 시장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충전 인프라 확충, 수소 공급망 안정화, 국가 차원의 일원화된 관리 체계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 세 가지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수소전기차는 진정한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고, 한국은 세계 수소경제를 이끄는 선두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