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판’의 한 장면. 극 중 극 형식으로, 등장인물들이 인형극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 | 아이엠컬처
입김이 신음처럼 새어 나오는 날씨였다. 냉장고 문을 열어둔 것 같은 바깥 공기로부터 도망쳐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뮤지컬 ‘판’은 2016년 리딩 공연으로 시작해 2017년 초연 이후 재연과 삼연을 거쳤고, 2021년 사연, 2023년 오연에 이어 2025년 12월 23일부터 2026년 3월 8일까지 육연으로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한 마디로 한국 창작뮤지컬을 대표하는 스테디셀러 중의 하나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한두 가지 재주만으로는 여기까지 오기 어렵다. 여러 시즌을 거치며 끈질기게 살아남는 작품들에는 확실히 ‘뭔가’가 있다. ‘판’은 웃기고, 흥겹고, 친절한 얼굴로 시작하지만 그 안에는 단단하고 묵직한 이야기의 힘을 숨겨두고 있다.
배경은 19세기 말 조선. 서민들 사이에서 세상을 풍자하는 패관소설이 퍼지자, 책을 빌려주는 새책가를 이 잡듯 뒤져 소설을 모아 불태우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뮤지컬 ‘판’은 여섯 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 각자 번호가 적힌 팻말을 뒤집어 들고,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 | 아이엠컬처

달수와 이덕이 줄타기 묘기를 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인형극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 아이엠컬처
과거시험에는 별 뜻이 없던 부잣집 도련님 달수는 어느 날 새책가 앞에서 우연히 이덕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다. 그를 뒤따라가다 도착한 곳이 매설방이란 희한한 이름의 장소. 시대를 읽는 눈을 가진 춘섬이 운영하는 이 공간에서 이덕은 전기수(소설 전문 낭독자)를 위한 소설을 필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달수는 조선의 여인들을 이야기 하나로 홀리고 다니는 희대의 전기수 호태를 만난다. 금단의 열매 맛을 알아버린 순간, 달수의 인생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줄거리만 보면 “그렇구나” 정도다. 나 역시 줄거리 정도는 읽고 갔다. 그런데 사전 예습은 별 도움이 안 됐다. ‘판’은 팸플릿에 인쇄된 줄거리 요약따위를 따라가는 공연이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만들어 밥상에 올리는 즉석요리 같은 공연이기 때문이다. 마당극과 옴니버스 형식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얹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다. 멜로와 코믹으로 기분 좋게 나아가던 이야기는 어느새 정치풍자의 판으로 ‘스윽’ 넘어간다. 전환이 워낙 부드러워 관객은 눈치채지 못한 채 다음 판 위에 올라서게 된다. 정신을 번뜩 차려보면 이미 다른 이야기가 시작돼 있는 것이다.

사진제공 | 아이엠컬처
재즈의 즉흥연주 같은 하이라이트는 전기수 호태가 관객에게서 제시어를 받아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면이다. 당연히 관객이 다르니 내용도 공연 때마다 달라진다. 실패할 위험도 당연히 있다(내가 관람한 날도 크게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판’은 이 장면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무모함이야말로 ‘판’의 대표성격인 것이다. 안전하고 미지근한 완성보다 오를 수 없을지도 모를 정상 등극의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
음악의 에너지도 강하다. ‘어둠의 마법사들’, ‘새가 날아든다’ 이 두 곡에서 여섯 명의 배우가 뿜어내는 박력은 핫팩 네 개를 등짝에 붙여놓은 느낌이다. 객석의 공기가 눈에 띄게 달라진다. 몸이 반응하니, 작품이 던지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억압의 시대에 이야기는 왜 필요한가. 말 한마디가 사람을 어떻게 살게 하는가. ‘판’은 이 질문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한바탕 웃기고 떠들게 만든 다음, 관객 스스로 느끼게 할 뿐이다.
뮤지컬 ‘판’은 관객들의 ‘오늘’을 잠시 붙잡게 해준 작품이었다. 이런 판이라면, 한 번쯤은 기꺼이 뛰어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아참, 이번 시즌에서 호태 역의 김지훈, 춘섬 역의 박은미는 특히 반가운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또 다른 한국 창작뮤지컬의 간판스터 ‘빨래’ 멤버이기도 하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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