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이세영, 지금까지 이런 배우는 없었다

입력 2019-03-22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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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연예부 기자의 공식 인터뷰는 1:1 혹은 1:N으로 진행된다. 수첩보다 노트북을 든 기자가 더 많아졌지만 기자와 배우가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기자는 ‘쓰고’ 배우는 ‘말하고’. 보통의 인터뷰 현장은 그러하다.

배우 이세영과의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 종영 인터뷰 현장은 신선했다. 멋스런 블랙 벨벳 슈트를 입고 등장한 이세영의 앞에도 ‘쓰는 것’이 놓였다. 이세영이 직접 준비한 수첩과 필기구였다. 모든 배우를 만나본 건 아니지만 인터뷰에서 메모를 함께하는 배우는 이세영이 처음이었다(영화 ‘인터스텔라’ 중국 기자간담회 때 앤 해서웨이가 끄적이는 모습은 봤다. 알고 보니 낙서였지만).

“평소 메모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내가 잘 살아가고 있나’ ‘맞게 가고 있나’ 되짚어보는 시간을 종종 가져보면서요. 자기 전에는 그날그날 느낀 것들, 연기적인 고민과 그에 대한 답, 배우로서의 방향성 등을 메모하곤 해요.”

수첩보다 더 신선한 건 명함이었다. 기자의 명함을 받은 이세영은 곧바로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네모난 명함 속 그의 직급은 [오피스 라이프 스타일팀 과장&소속배우]. 이세영은 “아역배우 경력을 인정받아 ‘과장’이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무실에 직접 구매한 책상을 가져다놓고 활동이 없을 때는 직장인처럼 출퇴근 한다고도 말했다. 지금까지 이런 배우는 없었다. 배우인가 소속사 직원인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사무실에 출퇴근하는 배우 이세영. 전용 책상은 회사 본부장의 뒷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세영은 “사무실에는 사무용품이 많아서 좋다”며 “공부고 하고 낙서도 하고 손님들이 오면 기웃거리기도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중적인 것 같아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늘어져 있고 싶은데 집에 있으면 양심에 찔리더라고요. 회사에 억지로라도 나와 있어야 마음이 좋아지고요. 저도 발전해야 경쟁력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하지만 근래 ‘외근’이 잦아져서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고. 이 소식이 납득될 정도로 이세영은 ‘외근’(작품 활동)에 열심이었다. 지난해 드라마 ‘화유기’와 영화 ‘수성못’으로 팬들을 만났고 영화 ‘링거링’ 촬영을 마쳤다. 올해는 이달 종영한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과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왕이 된 남자’에서 강단 있는 중전 유소운 역을 맡은 이세영은 아역시절부터 다져온 탄탄한 연기 내공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여진구와 함께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저에게도 소운이는 ‘최애캐’)예요. 수동적이지 않고 시원시원하면서도 기품 있는 캐릭터라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많은 분이 공감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했죠. ‘왕이 된 남자’는 소중하고 값진 경험으로 남았어요. 감독님이 믿고 맡겨주셔서 조금 더 주체적으로 재밌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연기할 때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호흡을 맞춘 1인2역의 여진구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세영은 여진구와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며 “극 중 부부여서 그런지 진짜 결혼생활을 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여진구 씨와의 호흡에 기대감이 되게 컸는데 그 이상으로 잘 소화해주고 표현해줘서 저도 몰입이 잘 됐어요. 여진구 씨의 존재감만으로도 의지가 많이 됐고요. 사랑받으면서 연기하니까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멜로 연기를 할 때는 웃음이 터져서 조마조마하기도 했어요. 진구 씨가 너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보니까 저도 괜히 웃음이 나서요. 하하.”

개인 휴대전화 배경화면을 여진구의 사진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매 작품마다 캐릭터 몰입을 위해서 상대 배우의 사진으로 해둬요. 어느 정도 몰입이 되면 원래 배경화면으로 바꾸죠. 이번에는 생각보다 빨리 바꿨어요. 호흡도 잘 맞고 빨리 친해져서 금세 바꿨죠.


매 작품마다 스스로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는 이세영. 그는 매번 의심하고, 점검하면서 불안한 과정을 겪는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에게 ‘왕이 된 남자’는 끄트머리에서야 어슴푸레한 확신을 가져다준 작품. 이세영은 마지막 촬영을 떠올리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눈가가 이내 촉촉해졌다.

“항상 끝날 때까지 확신이 없어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왕이 된 남자’는 최종 화를 찍을 때 자꾸 울컥하더라고요. 대사를 해야 하는데 목이 메서 NG가 나곤 했죠. 엉엉 울고 싶은데 소운이는 그러지 못하는 캐릭터잖아요. 그 감정이 제 안에 쌓여 있었더라고요. 너무 슬프고 먹먹했어요. ‘아. 내가 정말 소운이로 살아왔구나’ 싶었어요. 다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야기하다 울컥했네요. 소운이를 마주하고 온전히 비워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은 여운을 좀 더 간직하고 싶어요.”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될까. 어느덧 연기 23년차 배우가 된 이세영은 변함없이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다.

“목숨 걸고 연기해야죠. 연기도 그렇게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것 말고는 잘하는 게 없거든요. 다양한 역할을 보여드리면서 경쟁력을 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잘하고 싶고 오래 하고 싶어요. 꿈같은 이야기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을 다 해보고 싶어요. 액션도, 장르물도 해보고 싶고요. ‘비밀의 숲’에서 조승우 선배가 연기한 황시목 역처럼 직업적으로 유능한 캐릭터도 해보고 싶어요. 맡겨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올해도 열심히 살아서 지난해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될게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프레인T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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