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②] ‘블랙머니’ 이하늬 “‘극한직업’으로 결과주의 지양, 난 아직 묘목일뿐”

입력 2019-11-13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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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②] ‘블랙머니’ 이하늬 “‘극한직업’으로 결과주의 지양, 난 아직 묘목일뿐”

배우 이하늬는 명확했다. 인간으로서의 가치관도, 배우로서의 지향점도.

물론, 분명해지기까지 내면에 깃든 상처를 비워내는 작업을 해야 했고 그는 “보이지 않는 데미지(Damages)가 쌓인 적이 있었다. 자꾸 청소를 해야 건강하게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겠더라.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중들에게 평가받는 직업이잖아요. 14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져보기도 했고 억울한 적도 있었죠. 의연해지려다보니, ‘오늘 내가 하는 일을 튼실하게 이루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요. 스스로를 칭찬해주죠. 저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열심히 하되 애쓰진 말자!”

“일이 좋다. 연기에 넣을 에너지도 부족하기 때문에 노는 시간도 아깝다.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며 유머있게 말을 맺었지만, 현재 이하늬는 잉여 에너지를 연기하는 데 쏟고 있다. 그 덕분일까. 올해 영화 ‘극한직업’을 시작으로 드라마 ‘열혈사제’까지 흥행을 이뤘다.

이하늬는 “코미디로 이렇게 크게 호응을 해 줄지 전혀 몰랐다. 오히려 굉장히 불안했던 작업이었고, 개봉되는 날 ‘극한직업’ 팀들과 함께 울었다”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다. 코미디 장르인데 스크린 안에 있는 사람들만 웃으면 우스워지지 않나. 또 ‘극한직업’을 촬영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똥배우였나’ 싶었다”고 추억하며 울컥해 했다.

“그런 절실함, 에너지가 자양분이 됐죠. 저도 결과만 만들면 과정이 어떠하든 상관없다는 주의였어요. 이 업계도 예전에는 ‘연기만 잘하면 돼!’ ‘네가 분량 다 먹어야지!’ 라는 방식이 팽배했었고요.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말을 하는 제작진, 배우들과는 작업하고 싶지 않게 됐죠. ‘극한직업’을 통해 제 눈으로 확인했잖아요. 과정이 좋았고 결과까지 좋았다는 것을요. 새 세대에는 이런 에너지가 정말 필요해요. ‘극한직업’ 팀과는 서로 ‘다른 현장에서도 케미가 올라가도록 도와주자’고 다짐했어요. 이제는 독보적으로 우뚝 서기보다는 상생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죠.”




과정과 결과, 어느 쪽에 초점을 둘지의 가치문제를 영화 ‘블랙머니’와 이하늬가 분한 김나리 역할에 대입할 때 이하늬는 “점점 우리 사회 자체가 선과 악을 구분 짓기 어려워지고 있다. 회색 사회 같다. 영화적으로도 악을 위한 악인은 사라지고 있다. 타노스에게도 이유가 있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김나리, 양민혁(조진웅 분) 모두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아니에요. 김나리에게 집중하자면, 이 친구의 선택이 자신의 호의호식 때문만은 아니라고 해석했죠. 그녀의 가치 기준은 호의호식 이상이에요. 과정이 착하지 않을지언정 결과 자체를 선하게 만들겠다는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디죠. 국익을 이야기하잖아요. 현재 돈을 뛰어넘는 가치가 우리 사회에 있나 싶기도 하죠. 가치 기준이 모호한 현실을 얘기해보자는 것이 ‘블랙머니’입니다.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블랙머니'는 IMF 이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소재를 바탕으로 극화한 영화다. 석궁 테러 사건을 영화화한 ‘부러진 화살’을 통해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입증,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을 꾸준히 조명해온 정지영 감독이 함께 했다. 이하늬는 냉철함과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 역을 맡았다.


이하늬에 따르면 ‘블랙머니’ 시나리오는 이미 완성도가 높았고 결과물 역시 상업 영화 역할을 잊지 않았다. 그는 “론스타 사건(영화의 모티브) 자체를 몰랐었다. 창피하다”며 “무관심이라는 병에 걸려있다는 것을 다시 느낀 작업이었다. 내 세대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면 메신저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개인의 안위와 행복이 사회와 단절될 수 있나요? 이제는 사회의 안녕이 나의 안녕과 직결돼 있다고 느끼기에 ‘블랙머니’가 다룬 사건은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화두죠. 코 베어가는 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는 베어간 내 코를 찾아야해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사건이고 내년에 국가와 기업이 싸웠을 때 국가가 패소할 확률이 높다는데 약 5조 원을 누가 댈 것입니까. 전세대가 쌓아놓은 것을 후세대에 전가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이 영화가 개봉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고발까지죠. 관객들의 반응이 ‘블랙머니2’인 셈이에요.”

이어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서도 나름의 사명감을 언급, “국악을 4세부터 했고, 출신 자체가 한국 음악과 한국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했다. 1세대의 여운을 받은 입장에서 우리 문화를 알리지 않는 것이 직무유기하는 기분이고 가야금 연주 역시 나에게는 사명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인간문화재가 해야 할 일과 저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어요. 미스코리아 출신으로서 한국의 미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었죠. 제가 한 경험들이 글로벌 시장에 대한 안테나를 켤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자국민조차 전통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제가 매개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가감 없이 던져지는 사람이고 싶고요. 할리우드 진출이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이제 배우들도 시장을 열고 한국말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죠. 그렇다보니 저에게는 (할리우드 작품을 해도) 한국 콘텐츠가 최우선일 거예요. 안테나를 켜고 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이하늬는 정체가 뭐야? 이것저것 왜 이렇게 하는 것이 많아?’라는 시선도 있지만 20대 때의 밑작업들이 비료가 됐다. 여우주연상 등은 내게 위험한 발상이고 나는 아직 묘목이다”라고 30대 배우 인생의 바탕을 견고히 했다.

“20대 때도 ‘빨리 가려고 하지 말자’ 생각했어요. 돌멩이가 이끼를 겨냥해서 매일 구르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20대 때 다양한 경험이 자산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데뷔 후 2008년에 뉴욕 연기 스튜디오에서 공부했을 때도 ‘거길 왜 가나. 젊을 때 한자리라도 더 해야지’라는 말에 흔들렸다면 당연히 뉴욕에 못 갔겠죠. (그 경험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작품적으로도 이제야 장르의 결을 알게 됐어요. 기회가 와야 가능하지만 이제부턴 장총을 제대로 쏘고 싶어졌습니다.”

영화 ‘블랙머니’는 13일 개봉.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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