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티즈,그의처절함에대해…

입력 2008-04-28 05: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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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 이승엽의 기습 번트 일본야구 최고 연봉을 받는 요미우리의 4번 타자는 부진하다. 자이언츠의 OB들은 그를 중용하는 하라 보살을 압박한다. 삼진 2개를 당한 그는 번트를 시도한다. 예상치 못한 푸시 번트에 3루수는 당황하지만, 침착하게 그를 아웃시킨다. 거포의 고개가 푹 숙여 진다. 하라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번트는 작전이 아니었다. 장면 2 : 오티즈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클러치히터는 1할을 친다. 팽팽한 경기의 9회 공격. 1사에 주자는 1루다. 한 방이면 역전이 되는 찬스다. 모든 관중은 숨을 죽이며, 경기의 클라이막스를 만끽하고 있다. 심호흡을 깊게 한 투수는 그에게 회심의 볼을 뿌린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한다. 전형적인 병살코스. 이어 놀라운 장면이 벌어진다. 타자가 육중한 몸을 날려 1루에서 살기 위해, 단지 생존을 위해 슬라이딩을 감행한 것이다. 장면 3 : 박찬호의 번트 메츠 산하 AAA팀 뉴올리언스 제퍼스에는 작년 1500만불을 받았던 투수가 있다. 투수는 타석에서 보내기 번트를 시도한다. 하지만, 공은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든다. 반사 신경이 좋은 투수는 슬쩍 피하지만, 카메라 기자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사진이 배포된다. 그리고, 안타까움과 동시에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장면 4 : 초라한 엄석대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는 악의 화신이다. 그는 모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맹목적인 추종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의 절대 권력은 젊은 선생님의 부임으로 막을 내린다. 몰락한 영웅(?)은 학교에 방화를 하고, 초라하게 사라진다. 위의 이야기들은 책임, 열정, 의지, 성실, 절대악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편함′이다. 그것은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어느 순간 명령형이 아닌 권유형으로 대화하기 시작할 때나 학창 시절 대걸레를 휘두르며 군림하던 은사님이 허리가 구부정해진 모습을 봤을 때, 느끼는 불편함이다. 절대자의 움츠러듬이 주는 묘한 감정이다. 나는 결정론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제왕은 언제나 제왕이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혐오한다. 오티즈는 언제나 오티즈다워야 하고, 루고는 언제나 루고 다워야 한다면, 루고는 심각하게 억울할 것이다. 그렇지만, 오티즈가 마치 에릭 번즈처럼 다이빙하며, 날으는 돈까스가 되는 장면은 날 화나게 만든다. 그것은 정제된 의식 이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차라리 매니 라미레즈의 의연한 조깅이 보기 편하다. 재미있으면 웃으면 되고, 열받으면 욕하면 되기 때문이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에는 욕도 할 수 없다. 오티즈의 팬들이 그에게 바라는 것은 결코 처절함이 아니다. ☞ mlbpark 객원 칼럼니스트 [ 다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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