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의포스트게임]‘곰돌이’스피츠VS‘꾀돌이’펠프스

입력 2008-08-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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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은 ‘최고의 올림피언’ 마이클 펠프스를 스타로 탄생시켰다. 중국에서는 미국프로농구(NBA) 드림팀보다 인기가 뒤진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펠프스 신드롬, 펠프스 효과가 엄청나게 나타나고 있다. 보통 사람의 3배가 넘는 하루 1만2000칼로리 섭취, 5끼 식사, 자고 밥먹고 수영하는 게 전부라는 펠프스의 일과도 화제가 됐다. 펠프스 소식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이미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부터 그에 대한 보도가 주를 이뤘지만 실제 금메달 획득 진행 과정은 더 실감나고 극적이어서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시차 때문에 올림픽에서 찬밥 신세가 된 미국 서부지역 팬들도 펠프스의 메달 레이스는 3시간이 지난 후에도 TV를 떠나지 않고 시청했다. 올림픽에서 홀로 8개의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 초인적이다. 특히 체력 소모가 심한 수영은 더욱 그렇다. 펠프스는 9일(한국시간)부터 시작된 예선전을 포함해 17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게임에 출전했다. 금메달이 없었던 13일에도 200m 개인혼영 예선에 출전했다. 펠프스의 8관왕 등정으로 다시 한번 여론의 초점이 된 인물이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당시로는 전무후무한 7관왕에 오른 마크 스피츠다. 스피츠는 대회가 열리기 전 “당시 50m 자유형 종목이 있었다면 8관왕은 무난했을 것”이라고 펠프스의 도전에 다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보도됐으나 17일 7관왕 타이가 된 뒤 인터뷰에서는 “펠프스는 역대 최고의 올림픽 스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72년 스피츠의 금메달과 2008년 베이징에서 거둔 펠프스의 금메달은 어떻게 다를까. 두 선수가 올림픽이 배출한 최고의 수영선수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다. 체력안배에서 펠프스는 고도의 전략적인 게임을 택했고, 스피츠는 우직했다. 1972년 당시 스피츠는 자유형 100 ·200m, 접영 100·200m, 계영 400·800m, 혼계영 400m에 출전해 모두 금메달을 땄다. 펠프스는 자유형 200m, 접영 100·200m, 개인혼영 200·400m, 혼계영 400m, 계영 400·800m에 출전했다. 개인종목이 스피츠보다 1개가 더 많다. 스피츠는 당시 개인혼영에 출전하지 않았다. 50m가 채택되기 전까지 수영에서 가장 빠른 선수를 고르는 종목은 100m 자유형이다. 보통 자유형이 빠른 선수는 접영도 동시에 출전하며 이 역시 주종목이다. 스피츠가 100m, 200m 자유형, 100m, 200m 접영에 출전한 게 이 때문이다. 그러나 펠프스는 100m 자유형에 출전하지 않았다.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이었다. 또 육상이나 수영에서 가장 빠른 선수는 릴레이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선다. 즉 앵커가 된다. 펠프스는 릴레이에서 100m 혼영(세번째접영 주자로 출전)을 빼고 첫번째 영자로 나섰다. 스피츠는 팀 릴레이에서 100m 혼영을 제외하고 모두 앵커로 뛰었다. 펠프스가 앵커로 나서지 않은 이유도 체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스피츠가 출전한 36년전 뮌헨 대회에는 코치외에 마사지사, 스트레칭 코치등도 없었다. 펠프스의 8관왕은 이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스피츠의 7관왕이 과소평가받을 수는 없다. 문 상 열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미국의 주말은 스포츠의 날이다. 운동선수는 운동기계밖에 될 수 없는 한국의 학원스포츠. 언제쯤 진정한 지덕체 교육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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