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기자가간다]“묻지마!방향”…럭비공도두손든패스…럭비

입력 2008-08-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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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갓 접한 여성들은 한 팀에 몇 명이 뛰는지도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성들도 모르는 종목이 있을 터. 바로 럭비가 그랬다. 데스크로부터 체험 지시가 떨어졌으나 아는 게 거의 없어 걱정이 앞섰다. 성인을 기준으로 7인제와 15인제가 있다는 것, 땅에 튕기는 럭비공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정도가 사전 지식의 전부였다. 기본적으로 ‘땅 따먹기’ 경쟁을 하는 것은 같아도 헬멧 등 보호 장구를 잔뜩 착용하는 미식축구와는 전혀 딴판이다. 그 중 대표적인 규칙의 차이를 보자면 전진 패스가 안된다는 것. 가장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스포츠로 알려진 럭비, 그 멋진 체험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해본다. ● 물고기 모양의 볼, 끝까지 사수하라 체험을 도와줄 팀을 찾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마침 모교 양정고등학교가 워낙 럭비 잘하기로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진달용 교감과 원종천 체육부장의 허락을 받고, 찾아간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양정고. 졸업한 지 꽤나 오랜만에 찾아가는 모교 방문은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이었다. 불볕 더위가 한창인 오후 3시 반부터 훈련이 시작된다는 말에 ‘쪄 죽을까’ 두려웠으나 학창시절, 이 말썽꾸러기 기자에게 체육을 가르친 원 부장이 “그 때처럼 한 번 맞고 시작할까”라고 으름장을 놓자 불현듯 사고친 뒤 잡초 뽑고, 교무실 청소하던 옛 악몽이 떠올랐다. 불평을 삭힌 채 학교의 상징인 오렌지빛 유니폼을 입으니 꽤 그럴듯해 보인다. 듬직한 몸매(?)도 여느 후배들 못지 않았고. “오, 모양새가 좀 나오는데….” 다소 늦은 바람에 몸도 못풀고 모래 먼지가 풀풀 흩날리는 운동장으로 투입됐다. 첫 훈련은 바로 컨택(Contact). 신체 접촉이 많은 럭비 특성에 따라 공을 잡은 채 선수 한 명이 붙잡고 있는 딱딱한 샌드백에 몸을 부딪히는 연습이다. 일부러 슬쩍 달려드는데도 명치와 가슴 뼈가 으스러질 것 같다. 그 와중에 볼을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다른 선수들의 거친 손길을 피하느라 정신없다. 헉헉거릴 수밖에.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을 지도한 바 있는 임한수 코치가 측은해 보였던지 검은색 헤드기어를 가져와 머리에 씌운다. 익숙한 생김새에 자세히 살펴보니 두개골 부상을 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골키퍼 체흐가 착용했던 것과 똑같이 생겼다. “아프지 않을 겁니다. 안전이 최우선이죠.” 그런데 훨씬 덥고, 어지럽다. 머리의 열기가 잘 빠져나가지 않는 까닭이다. 차라리 착용하지 않는 게 낫다. 두 번째 코너는 볼을 동료들과 주고받는 패싱 연습. 상대에게 뺏기지 않고 안전하게 볼을 넘겨주는 게 우선이다. 요령도 있다. 상대 움직임을 미리 체크한 뒤 미끄러지듯 천천히 손목 스냅만으로 던져주는 것.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절로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볼은 번번이 동료가 뛰는 반대 방향이나 아래쪽으로 날아간다. “너무 힘주지말고, 최대한 안전하게 볼을 넘긴다고 생각해.” 결과는? 뭐, 모든 체험이 그랬던 것처럼 처참한 실패였다. ● 동료들에 대한 믿음! 그들에게 몸을 맡겨라? 럭비를 관전하며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동료들이 한 선수를 높이 던져(?) 다른 선수가 두 손으로 넘기는 볼을 낚아채는 플레이. 꽤나 거창한 이름을 기대했는데 그냥 ‘라인 아웃’이란다. 플레이 도중, 볼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갔을 때 이뤄지는 장면이다. 축구로 말하면 스로잉? 드디어 기다리던 ‘라인 아웃’에 돌입했다. 앞의 선수가 할 동안,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 쉬는 시간으로 생각됐다. “직접 해보라”는 원 부장의 지시와 이 코치의 격려 속에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알고보니 던지는 게 아니고, 앞 뒤에 선 동료들이 허벅지를 붙잡아 들어올리는 것이다. 힘 센 장사들이 번쩍 들어올리는데 절로 눈이 감겨 중심을 잃고 말았다. 동료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그냥 그들만 신뢰하고 자신감있게 허리와 팔을 쭉 들어올리면 되는데 그 쉬운 동작이 잘 안된다. 군 시절, 유격 훈련이나 공수 훈련도 잘 받았는데 웬 망신인가? 역시 남을 믿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원 부장은 거듭 “아니, 그렇게 쉬운 동작도 안되냐”고 다그쳤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10여 분간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만족스럽게 성공한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후배들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었다. 더불어 ‘사인 훈련’에 동참할 기회도 얻었다. 비스듬하게 늘어선 4-5명이 한 조를 이뤄 볼을 주고받으며 뛰는 연습이다. 여전히 앞서 가르쳐준 패스 동작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다른 동료가 땅에 떨어지고 마구 방향이 바뀌는 볼을 잡느라 두 배의 힘을 들여야 했다. 여기에 중간중간 휘슬에 맞춰 ‘컨택’도 함께 이뤄지면 여기저기에서 시큼한 땀내가 물씬 풍겨온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갈증이 치솟는데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처음에는 실전 훈련을 하는 중학교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직접 뛰고 싶은 욕망도 생겼지만 몇 번 ‘사인’과 ‘컨택’을 하다보면 금세 사라져 버린다. 마지막 코스로 도전한 것은 ‘킥’이었다. 축구 골대 너머로 보이는 H형 골대를 향해 볼을 차는 연습이다. 양쪽 대를 이어주는 ‘바’를 넘어가야 점수가 인정된다. 럭비 경기에서 유일하게 볼이 전진할 수 있는 장면. 미식축구에서 ‘터치다운’이라 불리우는 ‘트라이’ 이후 보너스 점수 획득을 위해 시도하는 ‘골 킥’으로 훈련이 이뤄졌다. 볼을 터치하는 곳에 따라 여러 각도가 나올 수 있으나 초보자인만큼 정면에서 찰 기회를 부여받았다. 고무 재질의 ‘콘’을 놓고 그 위에 럭비공을 세워 힘껏 찼으나 여지없이 목표를 빗나가 버린다. 3학년 후배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소용없다. 축구공도 못차는 판에 어떻게 럭비공을 제대로 찰 수 있을까. 스크럼도 경험하고 싶었으나 이날 훈련 스케줄에 없었다. 둔한 몸놀림에 훈련내내 헤맸어도 분명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럭비는 어느 한 명이 뛰어나서는 안된다는 것. 조직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철저한 협동심과 동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 체험이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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