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차기의 과학, 11m 룰렛…‘강심장’이 살아남는다

입력 2009-11-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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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와 키커의 숨막히는 대결인 축구의 승부차기. ‘11m의 러시안 룰렛’으로 불리는 이 싸움의 결과는 어느 쪽이 심리적인 안정을 찾느냐에 달려있다. 스포츠동아 DB.

이론상의 성공률 100%
키커 공 골라인 통과시간 0.4초
정지관성의 GK 반응속도 0.6초
실제 성공률 70~80%%…왜?


흔히 축구의 승부차기는 ‘11m의 러시안 룰렛’으로 표현된다. 키커와 골키퍼, 둘의 숨 막히는 대결은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하고, 보는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선수들의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한때 폐지론이 거론되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승부를 가를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승부차기 대결은 어느 한쪽은 반드시 이기고, 또 다른 쪽은 반드시 지게 된다. 키커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차야 승산이 있고, 골키퍼는 키커의 움직임이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어야 막을 수 있다. 물론 승률은 키커가 더 높지만, 골키퍼도 상대를 정확히 꿰뚫고 대처한다면 승률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주 ‘스포츠 & 사이언스’에서는 승부차기를 과학적으로 풀어본다.


○승부차기에 숨은 관성의 법칙

2009 K리그 6강 플레이오프(PO) 2경기의 승부는 90분, 아니 연장전에서도 결정되지 않았다. 모두 승부차기를 통해 준 PO 진출 팀이 가려졌다. 자연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골키퍼다. 성남의 김용대와 전남의 염동균이 주인공이 됐다. 이들이 키커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심리적인 우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들 이외에도 승부차기에 강한 골키퍼는 많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바로 이운재(수원 삼성)다. 국내 골키퍼 가운데 제일로 꼽힌다. 최근 끝난 FA컵 결승에서 이운재는 거미손의 위력을 발휘하며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이운재는 상대인 성남 일화의 3, 4번 키커의 킥을 정확히 방향을 예측하고 막아냈다. 이번 뿐만 아니라 이미 승부차기에서의 뛰어난 경기력은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 2007년 아시안컵 일본과의 3∼4위전 등 중요한 경기에서 이운재는 결정적인 선방을 펼쳤다. 마치 상대 키커의 마음을 다 읽었다는 듯이 넘어지는 위치는 정확했다.

승부차기에서 공을 차는 지점과 골대와의 거리는 약 11m. 키커가 찬 공이 골라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0.4초 정도이고, 골키퍼가 몸을 날리는 데는 약 0.6초 정도가 소요된다. 결국 이론적으로는 골키퍼가 공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이렇게 0.6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과학적 근거는 바로 골키퍼의 질량에 의한 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관성의 크기에 가장 중요한 물리량은 바로 질량이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 중에는 의외로 키가 작은 선수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메시(아르헨티나)나 카를로스(브라질) 등과 같은 선수들은 키가 작으면서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물론 어려서부터 계속적인 트레이닝이 가장 큰 원동력이겠지만, 분명 키 작은 선수가 큰 선수들에 비해 장점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질량과 관성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관성의 크기는 질량의 크기에 비례한다. 즉 질량이 작은 선수들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관성이 작아 정지에서 움직이기, 또는 움직이다 정지하기가 큰 선수들에 비해 유리하다는 것이다.

관성을 좀 더 세밀하게 분류하자면 정지관성, 운동관성, 회전관성이 있다. 정지관성은 말 그대로 ‘정지되어 있는 물체가 계속 정지하려고 하는 성질’이고, 운동관성은 ‘직선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등속직선운동을 하려는 성질’이며, 회전관성은 ‘어떤 축에 대하여 회전하는 물체가 계속 그 축에 대해 회전하려는 성질’을 말한다.


○골키퍼 심리적 안정 VS 키커 심리적 압박 ‘승부의 관건’

골키퍼의 경우 공이 오는 방향을 예상하지만 그 공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골키퍼는 바로 현재의 운동 상태인 정지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으로, 이는 정지관성에 해당된다. 또한 호날두(레알 마드리드)가 자랑하는 헛다리짚기 기술도 정지관성을 이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좌우로 여러 번 헛다리를 짚음으로 해서 상대방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나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면 상대방의 반응속도는 그만큼 느리게 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골키퍼의 질량을 가볍게 하고 힘을 기르고 키를 키우면 골을 막기 위한 훨씬 좋은 조건이라고 상상해 볼 수는 있지만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시간적 분석을 보면 페널티킥의 성공률은 100%%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약 70∼80%% 정도라는 것이다. 아마도 킥을 차는 사람의 심리적 압박감이 실수를 부르는 큰 이유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승부차기에서 이운재가 선방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위와 같은 과학적인 근거로도 설명이 안 되는 것은 FA컵 우승 이후, 이운재가 인터뷰 한 내용에서 답이 있지 않나 싶다. “키커(차는 선수)는 넣어야 하고, 나는 골을 허용한다고 해도 심적으로 부담이 안 된다. 키커는 5명이고, 한번의 기회만 있지만 골키퍼에게는 5번의 기회가 있다. 침착하게 기다리다 보면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온다.” 따라서 이운재는 자신의 심리적 안정과 키커의 심리적 압박을 잘 이용하기 때문에 승부차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송주호 KISS 선임연구원
정리 |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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