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을 만나다] 이종범, 왼손으로 쳐도 500점… “적수가 없네”

입력 2010-01-21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아구계 당구의 고수들
야구는 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스포츠다. 손으로 공을 잡아 던지고, 손으로 방망이를 잡고 치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미세한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만큼 야구선수는 손의 감각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야구인 중에는 당구의 고수도 많다. ‘달인을 만나다’ 2번째 코너는 ‘당구의 달인’이다. 야구계의 당구 고수는 누구일까. 당구에 얽힌 에피소드도 곁들여본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당구장 출입…“야구보다 먼저 배웠죠”


○1000점 김재박 자타공인 최고수
김재박 전 LG 감독은 야구계에 널리 알려진 ‘당구의 달인’이다. 스스로는 ‘700점’이라고 하지만 지인들은 “요즘은 당구 칠 기회가 많이 없어서 그렇지 전성기에는 1000점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와 당구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현대 감독 시절인 2005년 광주 원정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돼 담당기자들과 저녁에 내기당구를 친 적이 있다. 오른손잡이인 그는 왼손으로 친다는 조건 하에 500점을 놓았다. 처음엔 하수인 기자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며 여유를 부렸다. 그런데 ‘어∼어∼’ 하는 사이 그는 첫 경기에서 꼴찌를 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던 기자들은 놀라고 말았다. 당구공을 세팅하더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당구를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통 당구에 패했을 때 패자가 “한 게임 더 하자”고 제안을 하지만 그는 그런 말조차 없었다. 그러더니 공(적구)을 벽으로 몰아가며 연타를 쳤다. 결국 1위. 경기 중 말 한마디 하지 않던 그는 그제야 다시 기자들에게 길을 가르쳐주기 시작하며 웃음을 되찾았다. 기자들이 “담당기자한테 좀 져주면 어때서 기를 쓰고 이기려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자 그는 “승부에서는 져주는 건 없다. 무조건 이겨야한다”며 웃었다. 그의 승부욕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야구보다 당구를 먼저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2층 건물에 세를 줬는데 당구장이 들어섰기 때문. 3학년 때부터 아버지 몰래 당구장을 드나들며 배웠다. 야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했다.

400점 김시진, 당구치며 후배들과 대화의 장 마련


○김광수 500점, 김시진 400점 고수
현역 코칭스태프 중에서는 두산 김광수 수석코치가 당구의 신이다. 500점 이상의 실력을 자랑하는 프로급 수준. 야구선수로서도 마찬가지지만 당구에서도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했다. 김 코치가 기억하는 당구의 추억 하나. 1980년 건국대 4학년 때 계엄령이 선포돼 학교에서 쫓겨났다. 덕분에 휴가 아닌 휴가를 얻어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당구장에 들렀는데 어떤 일당과 내기당구가 붙었다. 김 코치는 당시 무려 40만원을 땄다. 당시는 자장면 가격이 300∼400원 할 때. 계속 게임을 하자던 돈 잃은 일당을 따돌리고 나와 서귀포로 도망갔다. 덕분에 제주도 여행은 화려한 휴가가 됐다.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도 400점을 자랑하는 고수다. 그는 지금도 선수들과 어울려 종종 당구를 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두산 김민호 코치는 300점을 놓고 치지만 2006년 시즌 후 모 케이블방송에서 개최한 프로야구선수와 코치들이 참가하는 당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원로 야구인 중에는 박영길 실업야구연맹 회장이 300점으로 최고수로 꼽힌다.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은 150점 수준.

‘종범신’ 이종범 현역 최고 500점… 이쯤되면 당구도 신?


○이종범 500점… 이도형·김종국 등 300점
최근 젊은 선수들은 대부분 컴퓨터 게임을 취미로 삼고 있어 당구와는 거리가 멀다. 현역 선수 중 당구의 최고수는 KIA 이종범. KIA 노대권 홍보팀장은 “이종범은 보통 500점을 놓고 게임을 한다. 내공이 깊은데다가 승부욕이 남달라 팀내에서 적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300점 가량의 고수들은 즐비하다. 한화 이도형, KIA 김종국, LG 류택현, SK 박경완 이호준 채병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중에서도 승부사는 따로 있다. LG 출신으로 현재 상무에서 활약하고 있는 투수 장진용은 300점을 놓고 치지만 ‘구리의 갈고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내기당구에서는 져본 적이 없는 승부욕을 자랑한다. 류택현은 “대학시절에 주로 배웠지만 프로에서는 당구를 칠 기회가 많지는 않다. 원정경기 때 우천으로 취소되면 가끔씩 당구장에 가는 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알기로는 김종국이 내기당구만 하면 이종범도 이긴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2군 생활에 지친 김상현… “당구장 사장 될 뻔 했어요”



○200점 김상현
한때 당구를 생업으로 삼을까 고민했던 선수도 있다. 그 주인공은 지난 시즌 MVP인 KIA 김상현이다. 무명선수 시절 그는 취미인 당구에 몰입해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그러나 9년 가까이 계속된 2군 생활에 조금씩 지쳐갔고, 한때 ‘차라리 야구를 그만두고 취미를 살려 당구장을 차릴까’ 고민까지 했었다. 그때 김상현이 자칫 야구를 포기했다면 프로야구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당구장 사장이 됐을지도 모르는 김상현의 당구실력은 대외적으로 200점이다.


당구는 다른손으로!… 야구선수들의 투철한 직업정신

야구인들을 보면 당구를 칠 때 대부분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손이 아닌 반대의 손을 이용한다는 게 독특하다. 자칫 팔꿈치나 어깨가 손상될지 모른다는 투철한 직업정신 때문. 김시진 감독, 이종범 등은 왼손으로 당구를 치면서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이종범은 원래 왼손잡이. 야구에 입문하면서 오른손잡이로 변신했지만 야구 외에는 모든 실생활에서 왼손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