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랙] SK 박정권 “노렸던 변화구…거침없이 쳤다”

입력 2010-10-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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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몰매 SK 박정권(36번)이 8회초 공격 때 최정의 희생플라이를 틈타 홈플레이트를 밟은 뒤 동료들의 과격한 세리머니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박정권은 이에 앞선 무사 1루에서 우중간 2루타로 쐐기타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PS선 12경기 5홈런 17타점
올 KS 1차전 쐐기포…3차전 쐐기타
수비 OK! 방망이 OK! 내년 캡틴 찜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4년 SK 유니폼을 입었다. 원래 2000년 연고 구단(박정권은 전주중-전주고 출신) 쌍방울에 2차 9번(전체 65순위)에 지명됐었다. 데뷔 첫해 24경기에 나가 타율 0.179(28타수 5안타)를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곧바로 2005년 상무에 입대했다. 제대하고 2007년 SK로 복귀했다. 마침 김성근 감독 부임과 때를 같이 했다. 전원야구를 모토로 삼은 김 감독은 박정권의 재능을 간파하고, 기회를 줬다. 그러나 1루에는 이호준이 있었다. 외야에는 이진영이 있었다. 타격에서 상대가 안됐다. 그래도 100경기나 나갔지만 타율 0.221이 고작이었다.

2008년에는 1루 수비를 하다가 덕 클락(당시 한화)과 충돌해 시즌을 조기에 접었다. 56경기에 타율 0.260. 다리 수술을 받았고, 재활에 시간을 쏟았다. SK가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지만 그는 집에서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2009년 다시 팀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이진영은 LG로 떠났고, 이호준은 부상이었다. 중책이 맡겨졌다. 우익수와 1루수를 겸업하면서 일약 131경기에 나가 타율 0.276, 25홈런 76타점을 기록했다. 2008년까지 그의 통산 홈런은 7개였는데 단번에 SK 최고 거포로 올라섰다.

진짜 위력은 포스트시즌에서 나왔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MVP를 포함, 포스트시즌 12경기에서 5홈런 17타점을 쏟아 부었다. 타격 조언을 했다는 부인까지 덩달아 유명인사가 됐다.

덕분에 2010년, 억대연봉 반열(1억 2500만원)에 올라섰다. 그 전까지 연봉은 5000만원이었다. 개막에 즈음해서는 첫 딸이 생겼다. 야구도 더 잘돼 생애 첫 3할 타율(0.306)을 정복했다. 부상 탓에 121경기만 나왔음에도 132안타를 쳐냈다. 그가 다쳤을 때 SK는 연패에 빠졌다. 전원야구에서도 박정권은 중심이라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홈런 포함 3타점을 쳤다. 2차전 번트 실패의 여파로 우려를 샀으나 18일 3차전에서 8회 쐐기 2루타로 건재를 과시했다. 김재현을 이을 클러치히터로 각인됐다. 내년부터 사실상 차기주장에 내정된 박정권이다. 내, 외야 수비에 강하고, 중심타자로서 좌우투수에 두루 강하고 득점권 타율이 가장 좋다. 김성근식 야구의 최적합 모델이다.

“삼성 PO 리듬? 생각하지 않았다”

(8회 무사 1루에서 2루타를 친 상황에 대해) 다음 타자가 조동화라서 번트일까 아닐까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초구 2구 (사인을) 안내셨다. 그 앞 타석에서도 그렇고, 그 타석에서도 초구 2구 변화구가 들어왔다. 그래서 변화구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포크볼이 좀 밀려왔다. 실투였다. 삼성이 (PO 거치면서)리듬을 탔다 뭐 이런 건 생각하지 않았다. SK 야구를 하기 위해서 팀 내부만을 생각했다.

대구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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