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광저우 에세이] “해켓” 이름만 들어도 움찔하던 그 소년, 박태환이…

입력 2010-11-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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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선수. [스포츠동아 DB]

2004아테네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이었습니다. 박태환(21·단국대)의 아버지 박인호 씨는 아들과 함께 집 앞 햄버거 가게에 갔다고 합니다. 조촐한 회식자리였지요. 중3이란 어린 나이에 올림픽에 나가는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요.

햄버거를 베어먹는 아들의 입만 보아도 배가 불렀습니다. “태환아, 긴장하지 말고…. 이언 소프, 그랜트 해켓(이상 호주), 마이클 펠프스(미국) 다 네가 좋아하는 선수들이었잖아. 걔네랑 한 번 겨뤄본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니?”

어? 갑자기 햄버거를 먹던 아들이 움찔움찔 합니다. “소프”라는 말이 나올 때 한 번. “해켓”이 나오니까 또 한 번. 이 정도면 아연실색 할 정도입니다. 아들이 햄버거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거립니다. “아빠는 참. 내가 어떻게….” 겉으로 표현은 못했지만 그 때는 아버지도 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대요. ‘하긴…. 몸만 건강히 다녀와라.’ 결국 그 대회에서 박태환은 수영장 물에 “몸만 담그고”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좀 흘러 처음으로 호주전지훈련을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가 부딪힐까봐 어깨도 움츠리고 다녔대요. 수영장에 다녀온 아들이 한 마디를 합니다. “아빠, 몸이 흔들려.” 워낙 체격이 좋은 선수들이 물살을 가르니, 옆 레인에서도 그 물살의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였습니다. 실제로도 그랬을지 모르지만, 그 만큼 박태환은 작은 존재였습니다. 아니, 한국수영이요.

하지만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은 아시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곳 언론에서도 박태환의 입국장면을 보도하고, 수영이라면 ‘변방의 변방’인 싱가포르의 언론에서도 인터뷰 요청을 합니다. 남자자유형은 수영에서도 메인종목입니다. 중국에서도 무수한 수영금메달 후보 중에서도 장린과 쑨양이 가장 주목을 받습니다.

하지만 박태환은 세계적인 수준의 그들을 꺾고 이번대회 첫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2009년의 아픔을 딛고 선 박태환의 부활일기는 그렇게 첫 페이지를 넘깁니다. 6년 전 햄버거 가게의 그 소년은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타국선수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당당히 수영장을 누비는 모습을요.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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