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선수. [스포츠동아 DB]
호주 마이클 볼 코치와 오기의 프로젝트
세계 정상들과 1일 1만3000m 지옥 전훈
승부 근성 부활…폐활량도 7000cc 회복
“얼떨떨…옆에서 쫓아와 죽도록 도망쳤다”
박태환(21·단국대)의 생일은 9월27일. 2009년 그의 스무 번째 생일은 우울했다. 생애 가장 큰 시련으로 기억될 로마세계선수권 직후였기 때문이다. 세계 정상들과 1일 1만3000m 지옥 전훈
승부 근성 부활…폐활량도 7000cc 회복
“얼떨떨…옆에서 쫓아와 죽도록 도망쳤다”
그 즈음 실시한 심리평가에서 박태환은 내적동기와 자신감 등 많은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 해 겨울은 추웠다. 박태환의 아버지 박인호 씨는 “크리스마스 때 집에서 혼자 보내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고 털어놓았다. “나가서 놀라”고 등을 떠밀 정도였다.
그에게 가족은 부활의 큰 동기 중 하나였다. 박태환은 “아버지의 처진 어깨가 더 가슴 아팠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온갖 저평가는 마린보이의 승부근성에 불을 댕겼다. 운동 하나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인호 씨는 “한 번은 태환이가 ‘내가 이제 끝났다고? 아 ×팔려’라며 마음을 가다듬더라”고 전했다.
1월 마이클 볼(호주) 코치의 영입 이후 박태환의 부활 프로젝트는 탄력을 받았다. 1월16일 호주전지훈련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강도 높은 훈련이 시작됐다. 외국인 코치와 호흡을 맞춰보는 것은 박태환의 오랜 꿈이었다. 당시 태릉에서 만난 그는 “철저하게 수영이 싫어서 물에 들어가기 싫은 정도가 돼야 정상에 설 수 있다”면서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고 했다.
호주전지훈련. 1만2000∼1만3000m의 훈련이 박태환을 기다렸다. ‘의지만 있으면 된다’는 천재에게 그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세계정상급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특유의 승부근성도 다시 깨어났다. 훈련이 지루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조절하고,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는 볼 코치의 도움도 큰 힘이었다.
2월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스테이트오픈 자유형200(1분46초98)·400m(3분45초03)에서 1위를 차지하며 자신감을 찾은 박태환은 8월 미국 팬퍼시픽선수권에서도 자유형200(1분46초27)·400m(3분44초73)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훈련 량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영법감각과 폐활량도 회복됐다. 한 때 500cc 가량 떨어졌던 그의 폐활량은 현재 7000cc 가까이로 돌아왔다.
그리고 완벽한 준비 속에 16일 자유형200m에서 아시아신기록(1분44초80)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은 “너무 좋은 기록이 나와 버렸다. 나도 놀라 얼떨떨하다”고 기뻐하면서도 “한 종목만 끝났을 뿐”이라고 했다.
아직 자유형400·1500m 등이 남아있는 상황. 경쟁자는 200m결선레이스를 마친 뒤 “옆을 봤는데 계속 쫓아와서 계속 도망을 쳐야 했다. 경쟁심이 무척이나 강한 선수”라고 표현한 중국의 신예 쑨양과 ‘오랜 라이벌’ 장린이다. 시련은 역시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법.
쑨양과 장린을 평가해달라는 중국 취재진의 질문에도 박태환은 “내가 그 선수들을 평가하는 것은 건방지다고 생각한다”며 겸손했다. 이어 “도와준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권태현, 박철규 트레이너, 훈련 파트너인 이현승 선수, 마이클 볼 코치 등이 고맙다”며 공을 돌렸다.
광저우(중국)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