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 사커에세이] 선수 커리어와 반비례 에이전트 파워의 진실

입력 2012-02-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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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에이전트로 10년 넘게 일해 오면서 선수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한 적이 딱 두 번 있다. 이영표의 AS로마 이적거부가 그 첫 사례이고, 또 하나는 꼭 1년 전 설기현의 포항 스틸러스 재계약 포기 사건(?) 때다.

이탈리아 명문 AS로마와 계약체결 직전 마음을 바꾼 이영표의 이적거부는 그동안 선수의 입을 통해 대강의 내용이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런던에 머물고 있던 선수를 대신해 로마 현지에서 ‘날벼락’을 맞아야 했던 필자가 이 사건을 제대로 묘사하려면 책 한권도 모자란다. 그 진실은 언젠가 얘기할 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선 에이전트가 선수의 결정을 뒤집을 수 없었던 하나의 사례였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영표의 경우 에이전트는 ‘결정권자’가 아닌 ‘조언자’에 머물러야 한다. 절대자인 그분만이 진정한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이영표 설득 포기가 어쩜 미천한 인간이기에 필자가 느꼈던 한계 때문이었다면 2011 K리그 개막을 앞두고 터진 설기현의 이적파동은 진정으로 선수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누가 봐도 설기현은 포항에 남는 것이 맞았고, 그 소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선수의 절박한 심정을 잘 아는 처지에서 포항 잔류를 강권할 경우 자칫 선수가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고, 본의 아니게 구단과 감독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사적인 인연도 있었던 구단 대표와 감독에게는 여전히 마음의 빚이 남아있다.

위의 두 사례를 거론한 것은 ‘에이전트의 영향력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다. 구단과 협상을 하다보면 간혹 ‘에이전트가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한다’거나 ‘선수는 안 그런데 에이전트가 장난을 친다’는 오해를 종종 듣곤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에이전트는 선수의 분신이고, 선수가 만족하면 에이전트가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선수와 구단의 기대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 선수를 설득하는 역할이다. 선수의 이상과 구단의 현실 사이에 괴리가 크면 클수록 에이전트의 고민은 깊어진다.

에이전트의 영향력은 선수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현저하게 감소한다. 어린 선수들의 경우 판단력이 떨어지고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아 에이전트가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연륜이 쌓일수록 선수는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부터 에이전트는 결정권자가 아닌 충실한 조언자의 역할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사실 에이전트로선 후자의 경우가 더 편하다. 에이전트가 조언자에 머문다고 해서 선수 결정에 대해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수를 대신해서 결정을 한 경우든, 선수의 지침에 따라 실행만 한 경우든 에이전트는 그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한다. 그것이 에이전트의 운명이다.

(주)지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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