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 기자의 이슈&포커스] 북한 MF 량용기 “정대세 경기 인터넷으로 검색…전 노장이라 한국행 힘들겠죠?”

입력 2013-04-02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량용기. 스포츠동아DB

■ 북한 MF…재일교포 첫 J리그 주장 센다이 량용기

“인터뷰 시간은 15분. 정치적 질문은 절대 안 됩니다.”

J1(1부 리그) 베갈타 센다이 몬마 공보과장이 신신당부했다. 센다이에서 뛰는 북한대표팀 미드필더 량용기(31·사진)를 3월31일 여의도 한 호텔에서 만났다. 센다이는 2일 FC서울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갖기 위해 입국했다. 량용기는 대학 시절 부산을 방문한 후 1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명동의 원조 닭 한 마리. 그러나 체류기간이 짧아 힘들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오사카에서 민족학교를 다니고 축구 명문 한난 대학을 거쳐 J리그에서 활약 중인 재일교포다. 몬마 과장의 염려는 괜한 것이었다. 량용기를 만나고 싶었던 건 그의 출신 때문이 아니었다. 재일교포로는 J리그 최초로 팀 주장이 됐고, 프로 입단 후 10년 째 한 팀만 고집해 온 흔치 않은 이력이 궁금했다.

량용기가 센다이에 입단하던 2004년 팀은 J2(2부 리그) 소속이었다. 센다이는 2009년 J1으로 승격했고, 2011년 4위에 이어 작년에는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마지막까지 피 말리는 우승 경쟁을 벌였다.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창단 후 처음 챔스리그 본선 무대를 밟았다. 마코토 데구라모리 감독이 2008년 1월부터 5년째 팀을 지휘하고 있는데 강한 조직력과 끈끈함을 자랑한다. 그 중심에 량용기가 있다. 그는 2008년 주장이 된 뒤 3년 연속 완장을 찼다. 일본 사회에서 편견 심한 조선 국적 선수가 주장이 된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최근 몇몇 클럽으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에이전트로 활동 중인 윤태조 씨는 량용기에 대해 “한 마디로 의리의 남자다”고 표현했다.

“내가 의리의 남자? 한 팀에 오래 있어서? 하하. 센다이가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한 게 팀에 남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올해가 센다이 입단 10년째인데 그 동안 팀의 성장을 느꼈고 앞으로 더 큰 가능성도 봤습니다.”

량용기와 같은 북한대표팀 출신 공격수 정대세는 얼마 전 K리그 수원삼성에 입단해 큰 화제가 됐다. 량용기도 익히 알고 있다. “대세가 포인트 올리는지, 수원삼성이 이기는지 늘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있습니다.” 정작 량용기 자신은 K리그행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구체적 제안 받은 적도 없고. 사람 일은 모르지만 저도 이제 노장 축에 들어가는데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량용기는 센다이에서 못 다 이룬 꿈이 있다. “리그든 ACL든 FA컵이든 꼭 한 번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싶어요.”

량용기는 5년 전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실력을 점수로 매겨달라고 하자 “50점”이라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팀이 2부에 있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은? “아, 어려운데…. 그 때(5년 전)보다는 좀 올랐겠죠? 75점? 80점?”

센다이에서 정상에 서는 날 그가 스스로에게 100점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