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준 감독의 꿈 “FC하남을 축구 사관학교로”

입력 2013-04-23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스포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는 FC하남 이규준 감독. 사진 | 윤태석 기자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두물머리(양수리)에서 합쳐진 물은 팔당댐에 갇혀 짙푸른 호수를 이룬다.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 뒤로 FC하남 숙소가 자리 잡고 있다.

FC하남은 2011년 10월 창단해 이듬해인 2012년부터 축구협회가 주최하는 전국 고등부 리그에 참가 중인 U-18세 클럽 팀이다. 작년 10월에는 U-15세 팀인 FC조안(남양주시 조안면의 이름)도 창단했다. FC하남은 U-15와 U-18이 연계된 첫 순수 클럽 팀이다.

FC하남 이규준 총감독을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 숙소에서 만났다.

●하루 2시간 훈련 선구자

이 감독은 동북중학교(1991~2002)와 장훈고등학교(2003~2011) 감독 시절 국내외 대회에서 21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학원축구계에서는 소위 잘 나가는 지도자였다. 그는 1999년 뉴질랜드 U-17월드컵을 직접 본 뒤 큰 충격을 받았다.

“선수들의 수준이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나름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지도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창피하더군요. 제 지도자 인생에 전환점이 된 대회였죠. 지도자인 나부터 바뀌어야 한국축구가 선진국과 경쟁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감독은 2003년, 장훈고 창단감독으로 부임하며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16명의 창단 신입생들에게 하루 한 차례 딱 2시간만 훈련하겠노라 약속했다. 주변에서 다들 말렸다. 실패할 거라 손가락질하는 지도자도 많았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선수들은 훈련 외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다. 몇몇이 이상한 길로 빠지기 시작했다. 선수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하루에 3,4차례 훈련하고 싶니?”
모두 고개를 저었다.
“하루에 3,4번 훈련할 때 어땠어? 새벽에는 오전훈련이 신경 쓰이고 오전에는 오후훈련이 신경 쓰여서 어떤 훈련에도 100%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
선수들이 끄덕였다.
“우리가 하는 2시간 훈련에 너희의 모든 것을 바쳐라. 기진맥진해서 하루에 두 번 훈련을 아예 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 부어.”

학교 감독인 만큼 학생들의 진학도 신경 안 쓸 수가 없었다. 창단 신입생들이 3학년이 되던 해. 게임내용은 좋은데 뒷심이 부족했다. 초반 4개 대회 모두 8강에서 탈락했다. 4강제도(전국대회 4강에 들어야 대학진학 가능)가 폐지됐다고 해도 여전히 대학들은 4강에 들지 못한 고교 선수들을 외면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대로라면 1명도 대학에 못 갈 판이었다. 선수들에게 부탁했다.

“너희들이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내년, 내후년 너희 후배들도 하루 한 차례 훈련을 유지할 수 있어. 이렇게 끝나 버리면 장훈고도 다시 새벽, 아침, 오후 훈련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힘을 내다오.”

얼마 후 8월 백록기 대회에서 장훈고는 정상에 섰고, 3학년들은 무난하게 대학에 진학했다. 하루 한 차례 훈련은 이렇게 자리를 잡아 갔다. 이후 장훈고는 각종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신흥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미드필더 박종우(부산)와 장신 공격수 김동섭(성남) 등이 이 감독의 제자다.

●클럽축구 새로운 시작

장훈고가 연일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이 감독의 마음은 계속 꿈틀댔다. 학원이 아닌 클럽축구에서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철학에 충실하고 싶었다. FC하남과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학교에 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열악하다. 이 감독은 예전에는 얼마나 내는지 관심조차 없었던 전기요금, 수도세까지 아끼려 발을 동동 구른다. 하루 2시간씩 한 차례 하남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하는데 시간이 아까워 선수들은 버스 안에서 모두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그러나 이 감독의 얼굴은 평온하고 밝았다. 자신감도 넘쳤다.

“학원축구 지도자의 역할을 100이라고 한다면 절반은 입시에 맞춰져 있어요. 선수들을 상위학교에 못 보내면 무능력한 지도자죠. 그러니 선수들에게 매몰차게 승부를 강요할 수밖에 없어요. 이곳에서 획일적이지 않은 맞춤형 훈련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니 이보다 더 보람될 수가 없습니다.”

FC하남, FC조안 숙소의 모습. 사진 | 윤태석 기자


FC하남 선수들은 숙소 근처 하남고, FC조안 선수들은 남양주중에서 정규수업을 다 듣고 클럽으로 와서 훈련하고 합숙을 한다.

창단 초반에는 웃지 못할 일이 많았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훈련에서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7교시 수업을 모두 듣느라 훈련도 하기 전에 진이 빠져버린 것이었다. 이상하게 허벅지 부상자도 많았다. 하루 5~6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으니 허벅지에 무리가 온 것이었다. 지금은 모두 다 적응이 됐다.

클럽으로 오며 이 감독의 원칙에도 변화가 하나 생겼다. 사실 예전의 그는 선수들이 벌벌 떠는 지도자였다. 훈련 방법이 아니라 생활 지도가 엄격했다. 이 감독이 있을 때 동북중-장훈고 선수들은 유니폼 상의를 절대 하의 밖으로 입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껄렁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퇴출이었다. 이 감독의 동북중 시절 제자 양동현은 오죽하면 “흰 색 축구화 신는 게 소원이다”고 했다. 이 감독이 선수들에게 검은색 축구화만 신도록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FC하남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하남고 학생들이 몰려온다. 같은 반 친구를 응원하러 오는 것이다. 여학생들도 꽤 많다. 자연스레 여학생들과 교제하는 선수도 생겼다. 이 감독은 이를 허용하기로 했다. 대신 선수들에게 약속을 받았다.

“여자친구 앞에서 창피당하고 싶지 않지? 잘 하는 모습 보이고 싶지? 그럼 훈련시간에 더욱 충실해라.”

이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에게 관중석에 가서 인사하도록 시키고 있다. 팬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 감독은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도 봤다. 학생 뿐 아니라 순수하게 축구가 좋아 경기장을 찾는 시민이 점차 늘고 있다. 이 감독은 무릎을 쳤다. 그는 U-9, U-12에 이어 하남을 연고로 하는 프로 팀 창단이라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아직 먼 이야기일 수도 있죠. 그런데 변화가 보입니다. 우리 팀이 경기를 하면 하남시민들과 학생들이 와요. 동원관중이 아니에요. 자발적이죠. 시민들과 진짜 공유할 수 있는 그런 클럽을 만들고 싶어요. 프로창단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봐요. 하남시 인구가 16만 명이라고 하는데 보금자리 주택 정책으로 16만 명 정도가 더 늘어난답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클럽의 잠재적 팬인 셈이죠.”



●공부하며 축구 한다

FC하남은 작년 말 11명의 1기생을 배출했다.
9명이 대학을 갔고 중앙수비수 임동현(가이나렛 돗토리)과 미드필더 장정원(아비스바후쿠오카)은 일본 J2(2부 리그)에 진출했다. 임동현은 얼마 전 데뷔전까지 치렀다. 이 감독은 “두 선수 모두 미래 한국축구를 짊어질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다”며 기대를 보였다. 국내 대학이 아닌 포르투갈 리스본 대학 피지컬 전공으로 진학한 선수도 눈에 띈다. 이 감독의 조언을 따른 것이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피지컬 코치의 중요성은 이제 다들 알잖아요? 프로 팀들도 대부분 피지컬 코치가 있고요. 가까운 미래에 피지컬 코치를 필요로 하는 팀들이 훨씬 많아질 겁니다. 포르투갈에서 피지컬 공부를 하고 포르투갈어까지 배운다면 어떻겠어요? 우리나라 1부 리그 클럽 중에 브라질 선수 없는 팀 거의 없잖아요? 피지컬 자격증이 있는데 브라질 선수와 대화가 가능한데다 선수출신이라면? 이건 금상첨화죠.”

중·고등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대학, 프로에서 적응하지 못해 사회에서 도태되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공부하며 축구 한다’는 모토에 충실한 FC하남은 이렇듯 출신 선수의 미래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6년 후를 보며

FC하남과 FC조안 모두 현재 고등리그와 중등리그 경기 권역에서 중위권을 달리고 있다. 학원축구 지도자 시절 우승을 밥 먹듯 했던 이 감독 입장에서 성에 차지 않는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제가 가장 강조하는 건 패스와 트래핑 스킬입니다. 가장 쉬우면서고 또 가장 어려운 거죠. 이를 토대로 한 조직축구를 추구합니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지만 우리 팀 내용은 한 결 같아요. 작년 FC하남의 축구를 보고 올해 무려 120명이 입단테스트를 받으러 왔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솔직히 우승은 할 만큼 해 봤어요. 저는 우승보다 아이들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 유럽 빅 리그에 진출하는 그런 선수로 키워보고 싶어요. 우리 클럽을 축구 사관학교로 만들고 싶다고 할까요?”

이 감독의 머리와 눈은 ‘6년 후’를 보고 있다.

“저는 늘 6년 후를 생각합니다. 지금 FC조안에 들어온 아이들이 6년 동안 일관된 훈련을 받은 뒤 성인이 됐을 때 어떤 선수로 성장해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흐뭇합니다.”

이 감독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남양주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