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중이라 연습량이 부족해 몸매가 망가졌는데….” 사진 촬영을 위해 탈의를 요청하자 손태랑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웃옷을 벗자 상체에 복근이 드러났다. 그의 식스팩이 두드러질수록 아시안게임 메달 가능성도 높아질 것 같다.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트위터@ajapto
중3 때 소년체전 2관왕…고3 때 첫 태극마크
과도한 훈련으로 허리부상 고질병 되는 불운
4년 전 긴장감 못이겨 개인전 메달 꿈 물거품
대표 은퇴도 철회하고 인천서 명예회복 별러
손태랑(27)은 2012년 수영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고3때인 2004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지 8년 만이다. 2008베이징올림픽에 한국 다이빙 선수로는 유일하게 참가했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한국 다이빙의 간판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했다. 그랬던 그가 국가대표 은퇴 결정을 철회하고 9월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름도 (손)성철에서 (손)태랑으로 바꿨고, 팀도 부산 중구청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 옮겼다. 2년 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물이 좋았던 소년 “다이빙은 내 운명”
손태랑은 어릴 때부터 물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이 축구와 야구에 빠져있을 때 그는 수영장에서 살았다. 부산 여고초등학교 5학년 때 체육프로그램 중 수영 코치가 손태랑을 따로 불렀다. 다이빙 선수 출신이었던 코치는 그에게 ‘다이빙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선생님이 내 체격조건이 다이빙을 위해 태어났다고 했어요. 학창시절 체조선수였던 아버지 덕분에 텀블링 같은 걸 어렵지 않게 성공하곤 했는데, 그런 유연성도 눈여겨 본 것 같았죠. 어머니가 운동은 안 된다며 반대했지만 아버지의 설득으로 결국 허락해줬어요.”
그렇게 올라서게 된 점프대. 손태랑은 곧바로 재능을 발휘했다. 중3때인 2001년 소년체전에서 2관왕(3m 스프링보드, 10m 플랫폼)에 올랐다. 고2때 코치가 갑자기 바뀌면서 방황하기도 했지만, 훈련 팀을 옮기면서 다시 예전 실력을 되찾았다. 고3이던 2004년 동아수영대회에서 1m 스프링다이빙 부문에서 우승했고, 그 해 생애 첫 국가대표에도 발탁됐다.
손태랑(오른쪽)은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싱크로 3m 스프링보드에서 후배 박지호와 호흡을 맞춰 동메달을 땄다. 사진제공|손태랑
● 고질이 된 허리 부상 때문에 이름도 개명
다이빙 선수들은 대개 허리가 좋지 않다. 3m 스프링보드 위에서 뛰어오르면 선수들은 약 5m까지 공중에 떠있게 되고, 물 속으로 들어갈 때 수압 때문에 허리에 부담이 간다. 그에게도 허리병은 고질이었다. 고3때 다친 허리가 선수 생활 내내 괴롭혔다. 지나친 훈련이 원인이었다.
“어린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면서 좀 흥분했던 것 같아요. 보통 다이빙 선수들이 하루 연습에 100∼150번 다이빙을 하는 데 그때 나는 매일 250∼300번씩 뛰어내렸어요.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기량차를 훈련으로 극복해보려고 그랬는데, 결국 독이 됐죠.”
손태랑은 허리디스크 때문에 공익 판정을 받았다. 다이빙 선수는 상무나 경찰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일반인과 똑같이 병역의무를 이행한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할 경우 내년 입대를 계획 중이다.
이름을 바꾼 이유도 부상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철학관에서 “이름을 바꾸면 몸을 덜 다친다”는 얘기를 듣고 개명을 권유했다. 2012년 12월, 다이빙 선수 손성철은 손태랑으로 새로 태어났다.
● 다이빙 인생 마지막 도전 “인천 AG 반드시 메달 딴다”
“물에 닿는 순간 다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던지…. 창피해서 물 밖으로 나오기가 싫었어요.”
손태랑은 2010년 11월24일을 잊을 수 없다. 광저우아시안게임 싱크로 3m 스프링보드에서 박지호(23)와 호흡을 맞춰 동메달을 딴 후 출전한 1m 스프링보드 개인전.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3위를 달리고 있었다. 1986서울아시안게임 이후 24년만의 한국 다이빙 개인전 메달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긴장감 때문에 몸이 경직됐고, 입수 과정에서 큰 실수를 했다. 결국 메달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국가대표 은퇴 약속을 깨고 올해 인천아시안게임에 도전하는 이유도 그 기억 때문이다. 손태랑은 “그 실수 장면이 4년간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인천에서 명예회복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손태랑의 메달 꿈을 위한 든든한 후원자로 나섰다. 올해 초 공단으로 이적한 손태랑은 “지원이 지자체 팀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고마워했다. 3월 지상훈련 중 발목을 다쳤는데, 소속팀에서 받는 치료와 재활과정은 대표팀에 못지않다.
박유현(47) 국민체육진흥공단 다이빙팀 감독은 “손태랑의 점프력은 세계 최강 중국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재활을 잘해 6월 대표선발전을 통과한다면 아시안게임 메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17년 선수생활의 마지막 도약을 준비 중인 손태랑. 그는 “우리와 중국선수들과 신체적 조건에서 큰 차이가 없는 만큼 ‘다이빙계의 박태환’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후배 선수들에게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올 가을, 스프링보드를 구른 후 힘차게 날아오를 그의 점프쇼가 기대된다.
손태랑은? 1987년 2월14일생(부산광역시)/ 171cm·66kg/ 부산 여고초-여명중-부산진고-한체대/부산 중구청(2010∼2013)/ 국민체육진흥공단(2014∼)/ 2007방콕유니버시아드 대표/ 2008베이징올림픽 대표/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3m 스프링보드 싱크로나이즈드 동메달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ajap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