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센 김민성. 스포츠동아DB
1920~1930년대 리얼리즘 소설가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좋은 날’은 제목과는 달리 지독히도 ‘운수나쁜 날’을 반어적으로 그리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다. 뭘 해도 안 되는 날,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날 말이다.
넥센 김민성(28)에게 25일(잠실 LG전)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날’이었다. KBO리그 사상 최초로 1경기에서 9개 아웃카운트를 잡아먹었다. 알고 보니 KBO리그 신기록이었다.
김민성은 이날 5번 3루수로 선발출장해 5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는데, 단순히 홀로 아웃된 게 아니라 병살타만 2개나 쳤고, 평생 한번 경험해볼까 말까한 삼중살타까지 기록했다.
1-0으로 앞선 2회초 첫 타석에서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난 김민성은 1-3으로 뒤진 4회초 1사 1·2루 찬스에서 6(유격수)~4(2루수)~3(1루수)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쳤다. 3번째 타석은 1-4로 뒤진 7회초 무사 1·2루. 여기서 김민성의 강한 타구가 LG 3루수 루이스 히메네스 정면으로 가고 말았다. 히메네스가 3루를 오른발로 밟아 2루주자 포스아웃시킨 뒤 2루수에게 던지고 다시 1루수로 연결되는 삼중살(트리플플레이)을 완성했다. 올 시즌 3호이자 역대 64호 삼중살. 삼중살타로는 역대 15번째 기록이다(직선타로 2명이 동시에 아웃되면 병살타로 집계하지 않듯, 직선타구는 삼중살타로도 기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역대 64차례 삼중살 중 삼중살타는 이번이 역대 15번째다).
넥센이 8회초 한꺼번에 5점을 뽑으며 6-4로 역전하는 순간에도 김민성은 아웃됐다. 5-4로 앞선 뒤 계속된 1사만루. 여기서 1루수 땅볼로 아웃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엔 3루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 아웃을 당하면서도 1타점을 올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대로 승리했다면 김민성은 7개의 아웃카운트로 이날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8회와 9회 1점씩을 내주며 6-6 동점이 되는 바람에 승부가 연장전으로 접어들었고, 또 타석이 돌아왔다. 연장 10회초 선두타자 김하성의 좌중간 2루타와 윤석민의 우중간 적시타로 7-6으로 앞서나간 뒤 계속된 무사 1루서 타석에 들어선 김민성은 5~4~3 병살타를 기록하고 말았다.
알고 보니 1경기 아웃카운트 9개는 역대 신기록. KBO가 집계를 해보니 1982년 KBO리그 출범 후 종전 한 타자의 1경기 최다 아웃카운트 기록은 8개로, 모두 7차례 나왔다<표 참고>. 그런데 이날 김민성은 누구도 넘지 못하던 8개의 한계선을 돌파하게 됐다.

하루가 지난 26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만난 김민성은 의연했다. 오히려 “기록은 깨라고 있는 것 아니냐. 이런 기록이 있으면 저런 기록도 있는 거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면서 “팀이 졌다면 모르지만 운 좋게도 팀이 이겼으니까 다행이다. 타자가 병살타 무서워서 소극적으로 치면 안 된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또 오늘이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염경엽 감독 역시 “나도 태평양 시절에 3루수 정면 타구로 삼중살을 한 번 당한 적이 있다”면서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어제 실책을 하고 삼진 3개를 당해도 오늘 아무렇지 않게 경기를 하는 강한 멘탈이 있기 때문이다. 박병호도 떠나고 강정호도 떠나면서 김민성이 우리 팀 중심 역할을 해야 하니까 부담이 될 거다. 이걸 극복해야 하는데, 다행히 시즌 초반엔 조금 흔들렸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다. 멘탈적으로도 더 강해지고 있다. 김민성이 우리 팀 기둥이 되는 과정이다”며 믿음을 보냈다.
현진건은 운수나쁜 날을 운수좋은 날로 그렸다면, 김민성은 운수나빴던 그날을 운수좋은 날로 받아들였다. 그날 1경기 9아웃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팀이 이겨 독박을 쓰지 않았으니까.
잠실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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