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희관은 탁월한 완급조절 능력과 제구력으로 느린 직구의 단점을 보완했다. 2013년부터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낸 비결이다. 이 여세를 몰아 2017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발탁을 기대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지난해 20승 도전…다시 생각해도 아깝다”
-벌써 올 시즌 끝자락이다. 요새 몸 상태는 어떤가.
“몸 상태는 최상이다. 기록을 보니 8월에만 4연승이더라. 아픈 곳도 없고 덩달아 팀 분위기도 좋으니 힘이 난다.”
-아직 시즌이 끝나진 않았지만 잠시 2016년을 돌이켜본다면.
“일단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있어 기쁘다. 올해가 유난히 더웠는데 무더운 날에도 러닝훈련을 늘려가며 체력을 관리했다. 이 점이 후반기에도 주효했다. 성적이 좋으니 자신감도 쌓여가고 있다.”
-4년 연속 10승도 가뿐하게 달성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큰 부상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뿐하게’ 달성한 건 아니다. 올해 10승까지 아홉수만 3번(3연패) 있었다. 다행히 야수들이 타선과 수비에서 도와줘서 4년 연속 10승을 이룰 수 있었다.”
-지난해 막판 부진을 씻는 활약이라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지난 시즌 중반까진 20승 욕심이 없었다. 그러나 막바지에 가니까 나도 사람인지라 욕심이 생기더라. 결국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임이 많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깝긴 하다. 앞으로도 세우기 힘든 기록일지 모르는데….”
-올 시즌엔 따로 아쉬운 점은 없나.
“전혀 없다. 개인적인 목표를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아쉬운 부분이 없다. 팀 정규시즌 우승은 물론이고 한국시리즈 2연패만 생각하고 있다.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

두산 유희관. 스포츠동아DB
● ‘느림의 미학’ 그 시작은 고교시절부터
-처음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렸을 적부터 원체 동네야구를 좋아했다. 그런데 하루는 초등학교 친구 한 명이 야구부원 모집 전단지를 들고 온 거다. 방배초에서 신입 야구부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들어갔다. 외아들인 데다가 주위에 운동하는 사람이 없어 반대를 하셨지만 내가 열심히 설득했다.”
-학창시절 유희관은 어떤 선수였나.
“지금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장난꾸러기였다. 중학교 때는 오락부장까지 도맡았다. 수련회에 가면 장기자랑 때 꼭 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춤을 췄다. HOT 옷을 입기도 했고, 엄정화 누나 춤을 추기도 했다.”
-유영준 팀장에게 들으니 야구를 그만두려고 한 적이 있었다고.
“중학교 때까지 키가 앞에서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였다. 키가 안 크니까 장래에 확신이 안 들더라. 그런데 당시 유영준 감독님께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 남들 운동하는 시간에 연습 대신 철봉에 매달리면서 키 좀 늘려보려고 애를 썼다. 결국 대학교에 들어가니까 그때서야 키가 크더라(웃음).”
-투수로 자리잡은 건 언제부터였나.
“고2 때까지 투타를 겸업하다가 고3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투수로 전향했다. 물론 그때도 공은 느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보는 편견이 있었다. 결국 고3 졸업반 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물론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지 싶다.”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고3 때(2004년) 나갔던 대통령배 개막전이다. 당시에 전년도 우승팀 대구고와 붙었는데 9회까지 완봉을 했다. 0-0으로 승부를 못 가려서 연장에 가서 겨우 이긴 경기였다. 그날 타석에서도 4타수 3안타를 쳤다. 그 이후로는 어디에 가든지 고등학교 때 7할5푼 쳤다고 자랑하며 다녔다.”

두산 유희관. 스포츠동아DB
● “2017WBC 승선? 나도 궁금하다!”
-중앙대 졸업 후 프로에 왔다.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제구력 하나 믿고 프로에 왔다. 그러나 초반엔 시행착오도 많았다. 대학교에선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두산에 와서 처음 2년이라는 시간을 허송세월했다. 그러다가 2010년 상무(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하면서 야구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어떤 점이 바뀌었나.
“우선 규칙적인 생활이 도움이 됐다. 몸도 좋아졌고, 살도 조금 빠졌다. 입대 전에 살이 좀 찐 상황이어서 걱정이 많았었다. 그런데 입대 후에 살이 조금씩 빠지니 밸런스도 경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2군과 1.5군 타자들을 계속 상대하면서 자신감이 쌓였다. 상무 박치왕 감독님이 나를 선발로 기용해 주시면서 소화이닝도 함께 늘었다.”
-이제는 어느덧 프로 8년차가 됐다.
“후배들이 점차 늘어나니까 그에 맞는 몫을 하려고 한다. 물론 후배들에게 싫은 소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선후배 예절이나 인사 같은 부분에 있어선 민감하다. 그런 점을 제외하면 아마 후배들이 나를 그냥 ‘재밌는 선배’로 보지 않을까.”
-최근 활약에도 국가대표팀 발탁이 없었다. 내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선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지난해에 18승 하고도 프리미어12에 못 나갔는데 올해는 되겠나(웃음). 야구선수로서 한번쯤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다. 뽑히면 영광 아니겠는가.”
-지난해 대표팀 탈락은 아쉬움이 많았을 듯하다.
“막판 부진이 조금 컸다. 시즌 막바지는 물론 포스트시즌에서도 내용이 좋지 않았다. 당시 대표팀에서 부상자가 나와 대체선수 발탁도 내심 노렸지만 안 되더라. 여태껏 한 번도 성인대표팀에 뽑히질 못해서 더 아쉬웠다.”
-국제대회에 나선 본인 모습을 그려본 적은 있나.
“사실 일본보다 미국이나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같은 나라를 상대해보고 싶다. 힘 있는 타자들이 많은 나라를 상대로 내 공을 던져보고 싶다. 다들 빠른 공만 노리고 들어올 텐데 내 공을 잘 맞힐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 이건 우리 동료들도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대표팀 말고 소속팀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투수조장이다. 조금 더 경험과 노하우를 쌓고 투수조장을 맡아 후배들에게 이를 전수해주고 싶다. 두산은 투수진이 똘똘 뭉치는 분위기다. 전통이라고 해야 할까. 시즌 끝나면 2박3일 동안 같이 놀러가기도 한다. 이러한 전통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다.”
-LG 류제국처럼 투수가 주장을 맡는 것도 가능해 보이는데.
“아휴, 팀 주장 욕심은 없다. 우리팀은 또 투수에게 주장을 맡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나는 그냥 투수조장만 하고 싶다.”
두산 유희관
▲생년월일=1986년 6월 1일
▲출신교=방배초∼이수중∼장충고∼중앙대
▲키·몸무게=180cm·94kg(좌투좌타)
▲프로입단=2009년 두산 입단(2009년 신인드래프트 2차지명 6라운드 전체 42순위)
▲프로경력=두산(2009년)∼상무(2010년∼2012년)∼두산(2013년∼현재)
▲2016년 연봉=4억원
▲2016시즌 성적=24경기 13승4패 방어율 4.06(29일 현재)
광주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