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메두사가 된 배구협회, 한국배구를 삼키다

입력 2017-01-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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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도곡동 배구협회에서 배구협회 서병문 회장의 불신임 임시총회가 열렸다. 대한배우회 황승언 회장(오른쪽) 및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서병문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017년 대한배구협회(이하 협회)는 메두사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는 머리가 둘 달린 괴물이다. 생각을 결정하는 뇌(腦)가 둘이니 ‘혼이 비정상’일 수밖에 없다.

협회는 당장 1월 2일 정유년(丁酉年)의 시무식을 연다. 서병문 협회 회장을 탄핵한 측은 홍병익 비대위원장 체제로 시무식을 주관할 계획이다. “불신임은 절차적·법리적으로 무효”라는 서 회장 측은 탄핵에 따른 직무정지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이 마당에 서 회장이 협회의 수장 자격으로 2일 시무식에 나타나면 그 대표성을 놓고, 바로 비대위원장 측과 충돌한다.

서 회장은 1일 “몸싸움을 우려해 시무식은 가지 않겠다. 그렇다고 직무정지를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회장이 협회에서 배구인을 만나는 대신, 2일 찾는 곳은 변호사다. 바로 법적 절차에 돌입하겠다는 뜻이다.

탄핵이 타당한지 아닌지에 골몰하다 배구인의 문제를 협치로 풀지 못하고 법으로 가는 그들만의 명분싸움에 시시비비를 따질 필연성은 못 찾겠다. 그들의 ‘소원’대로 법이 가려줄 것이다.

그저 우려스러운 지점은 한국배구의 추락하는 품격이고, 암울한 미래다. 협회의 다툼을 두고, 한 배구인은 이렇게 한탄했다. “차라리 올해 큰 국제대회가 없어서 다행이다.”

대외적으로 한국배구를 대표하는 협회는 국제배구연맹(FIVB)이 어떤 제안을 해와도 대응할 결재라인이 현재 불분명한 상황이다.

프로배구를 관할하는 KOVO(한국배구연맹)와의 협의도 마찬가지다. 회장 취임 후 지속된 내분 탓에 배구장 한 번 못 온 서 회장이었다. 사실상 고위층끼리의 소통은 전무했다. 이제 KOVO가 하려고 해도 홍 비대위원장, 서 회장 측 중 어디다 해야 할지 번지수가 애매한 지경까지 왔다.

메두사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은 돌이 돼 굳어버린다고 한다. 협회의 권력투쟁이 KOVO마저, 아니 한국배구 전체를 무기력한 돌덩이로 만들어버린 꼴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이 불확실성과 부끄러움을 왜 현장 배구인들이 감당해야 하나? 대체 한국배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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