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10) 비운의 원조 꽃미남 강동우

입력 2017-01-2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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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강동우 코치(오른쪽)는 현역 시절 ‘비운의 선수’로 불렸다. 신인이던 1998년 강렬한 모습을 보이다 펜스에 부딪히는 중상을 입었다. 이제 4년차 코치가 된 그는 지도자 생활에 대해 “배움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스포츠동아DB

한국야구 인명사전 8페이지 ‘강동우’칸 말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한국야구 사상 첫 아마-프로 혼성 드림팀의 일원으로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3회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국가대표 외야수로 선발됐으나 (1998년)10월16일 LG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대구)서 이병규의 타구를 잡으려다 펜스에 부딪히는 사고로 중상을 입어 탈락. 왼쪽무릎의 정골과 비골이 으스러져 엉치뼈를 이식해 복원하는 대수술…’

강동우(43)는 1998년 해성처럼 등장한 신인타자였다. 잘 생긴 외모, 준수한 타격능력과 투혼 넘치는 수비까지. 2016년 삼성 구자욱, 두산 박건우 이상으로 여성 팬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첫 해부터 주전으로 펄펄 날았다. 1998년 데뷔 첫 시즌 123경기에 출장해 124안타로 타율 0.300, 10홈런, 22도루를 기록한 강동우는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프로선수들을 선발한 ‘드림팀 1기’에도 뽑혔다. 그러나 행운은 여기까지였다.

‘프로야구 원조 꽃미남’, ‘비운의 선수’로 기억되는 강동우는 이제 4년차 코치가 됐다. ‘비운의 선수였지만 지도자로는 행운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덕담에 그는 “행운도 공짜는 없다. 선수 때 열심히 훈련한 것처럼 코치로 더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고 했다.

삼성 시절 강동우.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아직도 생생한 펜스 충돌의 순간

강 코치는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고 했다.

“1998년 신인 때 쌍방울에 잠수함 투수가 굉장히 많았다. 1군 엔트리에 겨우 포함됐는데, 당시 삼성 서정환 감독께서 쌍방울전에 좌타자들을 대거 투입시키면서 경기에 나가게 됐다. 안타를 치면서 꾸준히 선발 출장했다. 드림팀에 뽑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제 다 옛 이야기가 됐지만, 당시 펜스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충돌하면 당연히 아프고 큰 부상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펜스를 향해 뛰던 그날 그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충돌 후에도 그렇게 많이 다쳤을 줄은 몰랐다.”

강 코치는 선수 보호가 최우선인 지금 프로 야구장의 안전 펜스를 매일 바라본다. “더 과감하게 저돌적으로 수비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그는 말했다. 큰 부상으로 아시안게임 출전은 좌절됐고 “다시 떠올리기도 싫다”는 기나긴 재활이 시작됐다.

화려하게 프로에 데뷔한 강 코치는 1998년 이후 삼성~두산~KIA~한화 등을 거치며 2013년까지 뛰었다. 언제나 팀에 소금 같은 존재였지만 1998년 같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었다.

두산 강동우 코치. 스포츠동아DB



● 발야구 두산의 주루코치

강 코치는 2013시즌 후 두산의 코치 제의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선수와 코치는 모든 것이 달랐다.

“아쉬움이 왜 없었겠냐. 여러 팀을 돌아다녀 은퇴식도 못했다. 선수 때는 엄한 선배였다. 강성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러나 코치는 다르더라. 친밀하게 소통하고 더 다가오게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2군에서도 1군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기동력이 뛰어난 팀이다. 주루 코치는 잘해야 본전인 자리다. 한 순간의 판단착오는 경기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큰 비난이 쏟아진다.

강 코치는 “워낙 전력분석이 발달돼 박해민(삼성) 정도 주자가 아닌 이상 정확한 타이밍을 노리지 못하면 아무리 빨라도 도루실패 확률이 높다. 전형도 코치가 영상분석 등의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난 선수들에게 그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일 뿐이다. 감독님이 도루가 필요할 때 꼭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 임무다. 항상 전형도 코치 옆에서 배우고 있다. 최근 흐름은 도루 숫자보다 성공 확률이다. 도루를 저지해야 하는 강일권 배터리 코치에게도 배우고 투수코치들에게도 배운다. 선수들에게도 각각의 노하우를 배우고 공유한다. 배움의 연속이다”며 웃었다.

강 코치는 현역시절 통째로 한 해를 재활로만 보낸 1999년을 제외하고도 15시즌을 뛰었다. 그럼에도 ‘비운의 선수’라는 말이 따르는 이유는 강렬했던 데뷔시즌과 비극적인 큰 부상 때문일 것이다. 선수 때는 첫 해가 가장 빛났지만 지금 같은 노력이 이어진다면 지도자로는 마지막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 그의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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