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973일 만에 맛본 승리의 감격이었다. 류현진(LA 다저스)이 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필라델피아전에서 5.1이닝 3안타 3볼넷 9삼진 1실점 호투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단순한 1승보다 기나긴 부상과 재활의 터널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류현진은 1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필라델피아와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5.1이닝 3안타 3볼넷 9탈삼진 1실점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2014년 9월1일 샌디에이고전 선발승 이후 973일만의 승리다. 5번째 등판에서 거둔 첫 승, 시즌 성적은 1승4패 방어율 4.05가 됐다.
지난달 25일 샌프란시스코전서 6이닝 1실점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패전투수가 됐던 류현진에게 더 이상 불운은 없었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류현진은 1회초 선두타자 세자르 에르난데스에게 3루타를 맞은 뒤, 프레디 갈비스에게 적시타를 허용해 선취점을 내줬다. 대니얼 나바에게 볼넷을 내줘 무사 1·2루 위기가 이어졌으나 탈삼진 2개를 포함해 세 타자를 잡아내며 위기를 넘겼다. 타선도 1회말 연속 3안타로 동점을 만들어주며 힘을 냈다.
류현진은 공 11개로 2회를 삼자범퇴 처리하며 안정감을 찾았다. 특히 상대가 류현진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적극적으로 노리고 들어오자, 2회부터는 커브 비중을 늘려 효과적인 승부를 펼쳤다. 2회말 크리스 테일러의 솔로홈런으로 다저스가 2-1 리드를 잡자, 류현진은 탈삼진쇼로 화답했다. 1회 2개, 2회 1개, 3회 2개, 4회 2개, 5회 1개, 6회 1개. 매 이닝 삼진을 잡아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LA 다저스 류현진.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류현진은 5회 선두타자 캐머런 러프에게 2루타를 맞고 득점권 위기에 처했으나, 포수 야스마니 그랜달이 견제로 러프를 잡아내며 한숨을 돌렸다. 6회엔 선두타자 갈비스에게 볼넷을 내준 뒤, 나바를 삼진으로 잡고 마운드를 세르지오 로모에게 넘겼다. 로모가 연속 탈삼진으로 이닝을 마쳐 류현진의 승리 요건이 갖춰졌다. 류현진은 이날 타석에서도 볼넷과 안타로 제 몫을 해냈다.
경기 후 류현진은 “(승리가) 1000일 가까이 됐는데 새로운 기분이다. 계속해서 이기는 경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 이 정도까지 걸릴 거라고 생각은 못했는데 돌아와서 다시 이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뜻 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류현진의 직구 최고구속은 약 149㎞, 평균구속은 144㎞. 무엇보다 구속 저하 현상을 이겨낸 건 변화구, 그 중에서도 커브였다. 이날 던진 93개의 공 중 가장 많았던 건 체인지업(35구)이었고, 직구(32구) 커브(16구) 슬라이더(10구) 순이었다. 시즌 최다인 9개의 삼진을 잡아냈는데 삼진을 잡은 구종을 살펴보면 직구 1개, 체인지업 3개, 커브 4개, 슬라이더 1개였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류현진은 4개의 구종 중 커브를 가장 적은 비율(11.2%)로 구사했다. 그동안 카운트를 잡는 정도로 썼던 구종이지만, 결정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높은 코스의 직구와 같은 궤적을 보이다 큰 폭으로 떨어지는 커브는 체인지업을 대체할 만한 위력이 있었다.
최근 류현진은 체인지업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직구 스피드 저하와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커브라는 제3의 구종, ‘서드 피치’가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