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위기의 한국축구 전면에 등장한 두 남자 이야기

입력 2017-11-0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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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포옹하는 홍명보와 박지성.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8일 발표된 대한축구협회 임원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전문성과 세대교체’다. 각종 논란과 깔끔하지 못한 행정처리로 궁지에 몰렸던 축구협회가 파격적인 인사카드로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이번 인사의 중심인물은 홍명보(48)와 박지성(36)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거스 히딩크 감독의 애제자들이 위기의 한국축구를 구하기 위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홍명보는 행정을 총괄하는 전무이사에 선임됐다. 대표팀뿐 아니라 학원축구 등 모든 축구행정을 책임진다. 영국에 체류 중인 박지성은 유소년축구발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나갈 유스전략본부장에 발탁됐다. 그가 경험한 선진축구시스템을 한국축구에 접목시키는 역할이다.

홍 전무는 현재의 한국축구를, 박 본부장은 미래의 한국축구를 책임진다. 한국축구의 운명이 이들 두 남자의 어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명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어려운 결단 내린 홍명보

선수 홍명보가 은퇴한 건 2004년 10월이다. 진로를 행정가라고 못 박지는 않았지만 “행정가와 지도자 가운데 선택하라면 행정가 쪽에 마음이 쏠린다”고 했다. 실제로 은퇴 뒤 미국에서 스포츠마케팅 공부를 했다. 유럽으로 건너가 더 공부할 요량이었고,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일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인생항로는 2005년 9월에 바뀌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 오면서 코치로 영입됐다.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2002월드컵 이후 급격하게 추락한 한국축구의 재건을 명분으로 내세운 축구협회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코치 라이선스가 없어 무자격 논란도 일었지만 그는 “피할 수 없게 됐으니 뚫고 나가겠다”고 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핌 베어벡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수석코치가 되면서 지도자로 진로를 굳혔다. 2009년 FIFA U-20 월드컵 때 처음 감독을 맡아 8강에 진출시켰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따내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런던 올림픽 당시 홍명보(가운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하지만 꽃길은 거기까지였다. 2014브라질월드컵 개막을 1년 남겨둔 시점에 축구협회는 대안이 없다는 핑계로 홍명보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당시 여론은 4년 뒤를 기약하며 홍명보를 아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홍명보는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 한국축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결과가 뻔한 가시밭길을 자초했다. 결국 1무2패로 조별예선 탈락했고, ‘의리축구 논란’ 등 거센 후폭풍을 맞으며 자진사퇴했다. 무대 뒤로 사라진 지 2년여 만인 지난해 중국프로축구 항저우 뤼청 감독으로 복귀했지만 올해 5월 사퇴했다.

파란만장한 축구인생을 살면서도 홍명보가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게 있다. 주위의 후원과 사비를 들여 2003년 시작한 자선축구대회다. 소아암환자와 소년소녀가장을 돕기 위한 자선행사인데, 자신이 받은 사랑을 팬들에게 돌려주려는 마음이 강했다. 그동안 20억원이 넘는 기금을 조성해 어려운 이웃에 전달했다.

전무이사가 된 날 그는 “언제나 내게 일이 주어질 때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전면적인 혁신에 대한 (정몽규) 회장님의 의지가 강한 걸 확인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외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코치가 되었을 때, 2014년 월드컵 목전에 감독이 되었을 때, 모두 힘든 상황에서 결정을 내렸다는 그는 “지금 두렵지도 않고, 어려운 상황을 피해갈 생각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야 행정가의 꿈을 이루게 됐다고 하자 “12년이라는 세월을 돌아왔지만 후회는 없다. 행정이라는 게 현장을 지원하는 곳이다. 그동안 현장에서 어렵고 힘든 점을 잘 파악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지성.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박지성

한국축구 최고 스타였던 박지성은 2014년 은퇴를 하면서 지도자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깔끔하게 정리한 뒤 “제2의 인생은 축구 행정가”라고 못 박았다. 최근 일본 야후재팬과 인터뷰에서 “행정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한국과 아시아축구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꿈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유럽에서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실천의지는 강했다.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꿈을 키워 나갔다. 은퇴 이후 영국에 머물면서 어학공부를 했고, 올해 7월에는 FIFA 마스터 코스 과정을 마쳤다. 박지성은 세계적인 선수 출신답게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게 박지성의 위상이다.

올 여름 국제축구평의회(IFAB) 자문위원을 맡은 게 눈에 띈다. 한국인으로서 IFAB 자문위원에 선정된 것은 박지성이 처음이다. IFAB는 축구규칙과 규정을 결정하는 협의체다. 박지성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IFAB 자문위원으로서 세계 각지의 축구인들을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축구행정가의 길을 걷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성.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앰배서더이자 아시아축구연맹(AFC) 사회공헌분과위원이 된 것도 박지성이기에 가능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은 행정가가 되기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행정 중에서도 그의 관심은 유소년에 쏠려 있었다.

박지성은 현재 자신이 설립한 JS파운데이션의 이사장이다. JS파운데이션을 설립한 건 유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매년 개최하는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 유스시스템이 발달한 축구선진국을 초청했고, 이들과의 경기를 통해 국내 유망주들에게 경험을 선사했다. 올해 8월에도 강원도 평창에서 U-12 유소년대회를 열었다. “미래 한국축구의 근간이 되는 청소년축구발전에 기여 하겠다”는 생각을 그는 늘 강조했다.

이런 박지성의 의지는 유스전략본부장 발탁배경과 무관치 않다. 유스전략본부장은 국내 유소년축구와 관련한 정책을 세우고 추진해나가는 자리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선진축구의 유스 시스템을 이식시켜 한국축구의 백년을 설계해야한다. 그 길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제2, 제3의 박지성을 발굴하는 게 한국축구가 살 길이기 때문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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