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내친구] 배우 김보성 “링에서 휘두르는 내 주먹, 소외된 이들을 지키려는 내 진심”

입력 2018-01-0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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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배우 김보성은 복싱과 태권도에 두루 능한 ‘타격가’다. 이제 그가 링 위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이유는 오직 나눔의 의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사진 제공 | 로드FC

■ ‘격투기’로 나눔 실천하는 액션배우 김 보 성

소아암 환우들 도우려던 경기서 아찔한 부상
캄캄하던 눈이 보이는건 하늘이 다시 준 기회
의리는 유행어가 아니라 내가 평생 해야할 일
다시 몸 만들어 액션배우의 한도 풀고 싶다


“비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끝까지 도전하고, 더욱 정의로운 길을 갈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정의의 사나이가 되겠다.”

김보성. 사진제공|로드FC



● 사나이 인생, 후회는 없다

배우 김보성(52)은 2년 전 로드FC에 데뷔한 정식 격투기 선수다. 어려서부터 복싱, 태권도를 두루 연마해온 타격가로서 단지 제2의 인생을 맞이해볼 요량은 아니었다. 몸소 소아암 환우들을 돕고자 했다. 학창시절 불의의 사고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그에겐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고비를 넘으면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데뷔전을 준비하는 훈련 과정에선 오른쪽 팔꿈치 연골이 파열됐는데, 경기 당일엔 대전 상대인 일본의 콘도 테츠오의 암바 기술에서 빠져나오려다 왼쪽 팔꿈치 연골마저 부상을 입었다. 이제 오른팔은 평생 뼈가 어긋난 채로 지내야 하고, 왼팔은 회복이 더뎌 아직도 통증에 시달린다. 그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오래 걸린다”고 웃으며 “오히려 경기에서 패배하고, 다치면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다. 덕분에 전하고자 했던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자’는 계몽의 뜻도 잘 전달됐다. 후회는 없다”고 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테츠오에게 오른쪽 눈을 정통으로 맞아 순간 앞이 보이질 않았다. 어둠에 갇힌 3분.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오른쪽 눈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어긴 미안함, 더 이상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두려움 등의 만감이 교차했다. 다행히 빛을 되찾았다. 김보성은 “그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며 회상에 젖었다.

“사회적 약자, 소외된 사람들에게 파수꾼이 되어주겠다고 하늘과 맹세한 사람으로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다시 눈이 보였다. 하늘이 내게 주는 기회인 것 같았다.”

현재 그의 오른쪽 눈은 복합안와골절로 2mm가량 함몰된 상태다. 시력 손상의 위험 때문에 수술도 포기했다. 하지만 안중근 선생의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익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칠 줄 알아야한다)’의 뜻을 품은 그는 앞으로도 나눔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는 특별한 경기에 한해서라면 출전할 마음이 있다.

김보성. 사진제공|로드FC



● 지천명에 들어서니

스무 살 무렵이었다.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주위를 둘러보게 됐다. 여기가 김보성이 외치는 의리, 나눔의 출발점이다. 김보성은 “당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삶을 돌아보게 됐다. 그러면서 개인의 행복만 누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하늘은 왜 나를 살려줬을까. 내게 어떤 사명이 있지는 않을까. 그때부터 내 인생 자체가 보너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보성은 ‘의리’의 대명사로 통한다. 2014년 불어온 뜨거운 의리 열풍으로 전 국민들에게 제대로 각인됐다. 어느새 유행은 지나갔지만, ‘의리’에 대한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지금도 가끔 여러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들 그걸 기억하고 있더라. 더 많은 분들이 나의 진심을 알아주고, 응원해주고 있다. 나 스스로도 공인 중에서도 공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정의로운 쪽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인생을 살려고 한다.”

한편으론 오해도 산다. 어려운 이들을 돌보느라 가족에겐 소홀하단 편견이다. 이에 그는 “나는 오히려 가족을 너무나 깊이 사랑한다. 나처럼 가족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어느 가장에게 아픈 아이가 있다면 역지사지로 그 아픈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내 봉사와 기부의 원천”이라며 “의리를 실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진심은 반드시 진실로 전달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보성에게 의리는 단순히 유행어가 아니다. 도리어 그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이다. 올해로 52세인 그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뜻으로 50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섰다. 그리고 나눔의 의리를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김보성은 “이제는 당연히 평생을 해야 할 일이라는 느낌이 온다. 초지일관의 태도로 나이가 들수록 완전히 바로 서서 대한민국이 좀 더 정의로워지는데 일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김보성. 사진제공|로드FC



● 액션배우? 한 풀고 싶지!

김보성의 본업은 액션 배우다. 다만 배우로서 작품을 많이 남기지 못한 까닭에 못내 아쉬운 마음이 크다. 비록 젊은 시절의 날렵함은 없지만, 액션을 향한 열정은 여전하다. “무술과 이소룡을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액션영화를 찍었다고 하지만, 사실 지금 돌아보면 아쉬운 면이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부분에 대한 한을 풀고 싶은 마음은 있다. 허허”

사실 로드FC 데뷔전을 치르면서 곳곳에 부상을 입은 터라 운동을 하기 수월한 형편은 아니다. 양 팔꿈치의 연골이 말썽이라 간단히 미트나 샌드백을 치는 정도만 가능하다. 물론 김보성은 “다 핑계지 뭐”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또 태권도 3단인 그는 “40대 초까지만 해도 2단 앞차기, 돌려차기를 자유자재로 했다. 지금은 발차기가 조금 굳었지만, 체중을 줄이고 다시 연습하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제 새해니까 다시 운동 좀 시작해야지”라며 멋쩍게 웃는다.

김보성과의 첫 통화가 기억에 남는다. “다시 연락하자”는 인사말을 끝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리!” 순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의리’를 외치는 김보성의 자세는 다르다. 유명세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라거나 장난은 추호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진심뿐이다. 이마저도 의리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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