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2002 전사들의 감동 스토리는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8-01-0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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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한일월드컵 멤버 중 마지막 현역선수였던 현영민의 은퇴는 ‘2002 신화’의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거침없이 그라운드를 누볐던 영광의 얼굴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사진은 2002년 월드컵 8강전서 승리한 뒤 세리머니 하는 태극전사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또 2002년 얘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말끝마다 2002년을 들먹였다. 오늘의 한국축구가 잘 하든 못 하든, 언제나 비교대상은 그 뜨거웠던 2002년 6월이었다. 그때를 잊지 못한 우리는 툭하면 그때를 불러냈다. 그런 탓에 지난 16년간의 한국축구는 2002년의 연장선상에 놓여 이리저리 비교당하며 쥐어 박혔다.

왜 2002년인가? 그건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단 1승도 없었던 한국이 16강을 넘어 4강까지 오른 건 기적이자 감동이었다. 여태 단 한번도 본 적 없던 선수들의 투혼은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게 2002년의 실체다.

지난 주 현영민(39)이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2002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제니트(러시아)~서울~성남~전남을 거치며 K리그 통산 437경기를 뛴 레전드의 퇴장은 주목받을만했다. 하지만 정작 현영민 개인보다는 월드컵 4강 멤버의 마지막 퇴장이라는 의미가 더 부각됐다. 엔트리 23명 중 현영민이 가장 늦게 현역 유니폼을 벗은 것이다.

월드컵 4강이라는 후광을 업은 그들은 그라운드 밖에서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섰다. 풋풋했던 20대가 아니라 대부분 40대 아저씨가 된 그들은 지도자, 행정가, 방송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순항 중이다. 명성과 실력을 겸비한 덕분에 가는 곳마다 두각을 보인 것 또한 사실이다.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아무래도 현장이다. 현재 12명이 감독 및 코치다.

FC서울 황선홍 감독.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황선홍과 유상철은 각각 FC서울과 전남 드래곤즈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J리그 사간 도스와 울산 현대를 거쳐 지난해 초 세레소 오사카 감독으로 부임한 윤정환은 일왕배 우승을 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운재와 최성용, 김태영은 수원 삼성, 이을용은 FC서울, 최은성은 전북 현대, 최태욱은 서울 이랜드(U-15), 김남일과 차두리는 국가대표팀에서 각각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설기현은 성균관대 감독이다.

대한축구협회의 중심에도 2002 전사들이 자리했다. 한일월드컵 주장이었던 홍명보는 지난해 말 전무이사로 발탁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한 홍명보는 결국 자신이 원했던 행정가의 길에 들어섰다. 2002월드컵 이후 한국축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박지성도 유소년전략본부장으로 한국축구의 미래를 책임진다.

이영표 해설위원. 스포츠동아DB


방송해설 쪽에서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영표다. 그는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논리력과 통찰력을 과시하며 최고의 해설위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안정환도 번뜩이는 재치로 축구해설과 예능프로그램을 넘나들며 숨은 끼를 발산하고 있다. 송종국, 이천수, 김병지도 마이크를 잡았다.

FC서울과 장쑤(중국) 사령탑을 지낸 최용수와 포항 지휘봉을 잡았던 최진철, 창춘(중국)코치였던 이민성은 또 다른 도약을 준비 중이다.

이들 모두는 누가 뭐래도 행복한 축구인들이다. 팬들의 사랑은 기본이고 병역특례와 3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포상금, 순조로웠던 해외진출 등 월드컵 4강으로 누린 혜택은 특별했다. 물론 그걸 누릴 자격은 충분했지만 말이다.

터키와의 3 4위전이 끝난 뒤 헹가레 받는 히딩크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6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그라운드에서는 뛰지 않지만 여전히 한국축구를 위해 뛰고 있다. 2015년 말 현역에서 은퇴한 차두리는 당시 “정말 대단했고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만큼 모두가 그라운드가 아닌 곳에서 사랑을 준 사람들에게 반대로 줘야할 때인 것 같다”고 했다. 대부분의 전사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제 그 마음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온 힘을 다해 이룬 기적처럼 이번에도 온 몸을 바쳐 한국축구의 도약에 기여했으면 한다. 그들이 만든 감동 이상을 후배들이 이뤄낼 수 있도록 헌신의 아이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2년의 감동 스토리가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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