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형 해”, “형이 없었다면”…박민호·서진용의 즐거운 동행

입력 2020-02-01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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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파트너와 함께라면 고단한 여정도 웃음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SK 와이번스 필승조를 이루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박민호와 서진용이 그렇다.


나란히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019시즌 서진용은 개인 한 시즌 최고 기록을 모두 갈아 치웠다. 최다 72경기에 나서 68이닝을 소화했고 평균자책점 2.38 33홀드(리그 2위)를 수확해 불펜진의 핵심 자원으로 우뚝 섰다. 박민호도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다. 47경기(50.1이닝) 평균자책점 2.68로 마운드의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였다. 개인 성적으로 남은 3승 4홀드 뒤에는 궂은일을 도맡은 그의 헌신이 숨어있다.


서진용은 박민호의 숨은 공로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미처 드러나지 않은 박민호의 노력에 큰 도움을 받은 것이 바로 서진용이었다. 2019시즌 서진용은 입단 9년차, 박민호가 6년차로 이미 선배 대열에 합류한 뒤였다. 하지만 1군 엔트리에 자리 잡은 더 어린 후배가 없었다. 이에 불펜에서 물병을 나르고 운동 기구를 치우는 등의 작은 일을 박민호가 앞장서 해줬다. 최정예 필승조로 팀 승리에 전념해야하는 서진용을 위한 배려였다. 서진용은 2019시즌 자신의 조력자 중 한 명으로 박민호를 꼽았다.

서진용은 “(김)택형이나 (이)승진이, (백)승건이가 2군으로 내려가면 내가 사실상 불펜 막내였다”며 “2019시즌에 내가 잘 할 수 있게끔 도와준 것이 민호 형이다. 나이, 보직과 상관없이 ‘너는 이따 잘 던져야 하니까 쉬어. 형이 할게’라며 챙겨주던 말 한마디가 정말 고마웠다”고 돌아봤다. 그는 박민호를 두고 “불펜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한다.

서진용이 털어놓는 속마음에 귀 기울이던 박민호는 “저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내 역할을 잘 한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팀이 잘 될 수 있도록 동료들을 도와주는 일을 잘 하고 싶었다”고 밝힌 그는 “진용이는 6~7회 중요한 상황에 마운드에 오른다. 진용이가 불펜의 잡다한 일까지 한다면 팀에 오히려 손해다. 사실 별건 아니지만 내가 도와주면 진용이도 한결 편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연차, 나이를 따져가며 동생에게 일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동료를 피곤하게 만들어 공을 못 던지게 하고, 그 타이밍에 내가 마운드에 올라 잘 던지면 그게 무슨 경쟁인가. 그러면 팀에도 암흑기가 찾아올 수 있다. 나는 그걸 막고 싶다. 무엇보다도 우리 팀이 잘 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털어놨다.




결국 함께 웃었다. 새 시즌 나란히 고액 연봉자가 됐다. 박민호는 생애 처음으로 억대 연봉(1억 원)에 진입했고, 서진용은 9000만 원에서 2억 원으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서진용을 보며 “이제 네가 형을 하라”며 너스레를 떤 박민호는 최종 사인한 계약서를 받아들고 사진을 찍을 만큼 기뻤다. 그는 “받은 만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버니 치킨을 사 달라”며 조르는 박민호에게 서진용은 “매일 밤 사주겠다”고 약속하며 미소 짓는다.

야구장 밖에서도 뜻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에는 동료들과 함께 인천의 한 보육원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투수 박종훈이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은 곳인데, 그의 권유로 박민호, 서진용, 노수광, 한동민 등이 동참했다. 아이들과 캐치볼을 하며 놀아주고, 같이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 즐거운 시간도 선물했다.


박민호는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고, 구단의 공식 행사도 아니었다. 종훈이는 평소 봉사활동을 정말 많이 하는데 진짜 대단하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2군 선수들도 잘 챙긴다. 사랑의 골든글러브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야구 선수들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인가. 모두 팬들이 야구를 좋아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큰 영향력을 지닌 선수들끼리 모여 좋은 일을 하고, 누군가를 돕는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다보면 매년 겨울도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둘의 친밀한 관계를 모르는 사람도 없다. 팬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투수진 조합까지 생겼다. 박종훈, 김태훈, 서진용을 묶어 이르는 ‘웨시퍼’라는 호칭에 박민호가 추가됐다. 부모님이 빵집을 운영하는 박민호는 애칭이 ‘빵민호’다. 이에 몇몇 팬들은 1군에서 맹활약하는 넷을 두고 ‘웨시퍼빵’이라고 부른다. 이에 박민호는 “웨시퍼 세 명이 결과적으로 잠재력을 터트렸다. 정말 대단하다. 2007~2008년 박재홍 선배, 박경완 코치님을 보는 것처럼 SK의 역사가 되어가는 선수들이다. 요즘에는 팬들이 나도 함께 껴주시더라. 나는 옆에서 서포트하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결코 평탄하지 않은 야구 인생의 동반자다. 같은 1992년생이지만 생일이 빠른 박민호 때문에 둘은 한 살 터울의 형, 동생으로 지낸다. 또래만이 나눌 수 있는 공감대가 많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둘의 야구 인생도 엇비슷한 시점에 와있다. 서진용은 “나는 지금 야구 경기의 5회에 와있다. 중간 정도다. 이제 1년을 잘 했고 앞으로 FA(프리에이전트)를 비롯해 이뤄나가야 할 목표가 많다. 아직 야구 인생의 절반이 더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숨겨진 잠재력이 더 많다”고 했다.

30대에 접어든 박민호는 사뭇 다른 감정을 느낀다. 그는 “6회말 2아웃에 와있다. 아웃 카운트 하나만 더 잡으면 7회이고, 경기 후반이다. 더 이상 스물 몇 살 신인처럼 ‘슈퍼스타가 되겠다. 50홀드를 하겠다. 15승을 하겠다’는 다짐은 의미가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내가 해야 할 것이 뭔지 많이 생각했다. 나만의 가치를 찾는 거다. 후배들을 챙기고 동료들을 도와주는, 선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뒤로 빠져있는 게 아니라 뒤에서 서포트를 해주려는 것”이라고 힘 줘 말했다.
내심 후배들의 가세를 기다린다. 박민호는 “2020시즌 스프링캠프 명단에는 어린 친구들이 많이 포함됐다. 우리도 목이 마르긴 했다. 후배들이 1군에 올라와 잘 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웃었다. 기대감을 자극하는 후배들이 여럿이다. 지난해 상무에서 제대한 좌완 김정빈부터 유망주 이원준, 최재성까지 여러 이름이 나왔다. 서진용은 “한 명만 꼽자면 너무 많다. 정빈이도 그렇고 군대에 다녀온 친구들이 많다. 후배들 모두 잘 할 것 같다”고 믿음을 보냈다. 여기에 박민호는 “분명 새로운 얼굴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보탰다.

SK는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올 겨울 에이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하면서 선발진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여기에 외국인 원투펀치까지 모두 새로운 얼굴들로 꾸려졌다. 둘 다 KBO리그 경험이 없다. 이에 서진용은 “어린 친구들이 워낙 잘 한다. 용병들의 활약 여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박민호는 “변화를 겪고 있는 시점이지만, 우리는 강하다”고 자신했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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