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4번타자 박병호’, 언제쯤 믿음에 응답할까?

입력 2020-06-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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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앞에는 같고요. 5번은….”

프로야구팀 감독은 매일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사전 인터뷰를 한다. 이 자리에서 감독은 해당 경기의 선발 라인업을 발표하고, 그 선수들을 왜 기용했는지 설명한다.

키움 히어로즈 손혁 감독(47)은 선수기용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기로 유명하다. 본인의 판단, 코칭스태프의 보고, 선수의 컨디션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신중하게 선발 라인업을 결정한다.

그런데 꼼꼼한 손 감독이 사전 인터뷰 때마다 유독 자주 ‘생략’하고 넘어가는 대목이 있다. 바로 1번부터 4번까지의 타순이다. 그는 특별히 선수들의 컨디션에 이상이 없는 한 “앞에는 같다. 5번타자는…”이라며 설명을 시작한다. 이 생략에는 서건창~김하성~이정후~박병호의 국가대표 라인업이 포함돼 있다.

야수들의 체력적 측면을 고려할 경우 리드오프 포지션에는 가끔씩 변화를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손 감독은 4번타자 자리에서만큼은 올 시즌 확고한 ‘믿음의 야구’를 보여주고 있다. 박병호(34)의 존재감 때문이다.

붙박이 중심타자를 내세우는 손 감독의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우리 팀의 4번타자와 마무리투수는 한 시즌 내내 정해져 있다”고 누차 강조한다. 박병호와 조상우의 보직만큼은 변함없이 밀고 가겠다는 확실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손 감독의 믿음이 무색할 정도로 2020시즌 초반 박병호는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1일 현재 올 시즌 24경기에서 타율 0.212, 5홈런, 12타점, 15득점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홈런왕치고는 초라한 성적임에 분명하다.

세부 지표는 더욱 처참하다. 득점권 타율은 고작 0.160이고, 삼진은 33개로 쑥스럽게도 이 부문 1위다. OPS(출루율+장타율)도 0.746에 불과해 ‘국가대표 4번타자’의 공포감을 상대에게 전혀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키움은 올 시즌 공격 측면에서 외국인타자의 덕을 전혀 보지 못했다. 여기에 박병호까지 긴 침묵에 빠져있자 타선의 짜임새가 확실히 매끄럽지 못한 모습이다. ‘강력한 우승 후보’라는 시즌 전 평가가 무색하게도 12승12패로 간신히 5할 승률만 맞추고 있는 이유다.

믿음의 야구는 감독에게 늘 ‘양날의 검’이다. 계속되는 기다림 끝에 빛을 보면 ‘명장’ 타이틀이 붙지만, 반대로 결과가 좋지 못하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무능한 감독으로 낙인찍힌다. 2020시즌 4번타자를 박병호로 못 박은 손 감독은 올해가 끝난 뒤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모든 것은 반등이 절실한 박병호의 배트에 달려있다.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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