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딛고 일어선 이정은6, “가치있는 길은 쉽거나 편하지 않아”

입력 2020-06-02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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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6. 스포츠동아DB

얼마 전 여자골프 세계랭킹 10위 이정은6(24·대방건설)은 “휴식기 동안 친구들과 ‘명랑골프’를 치면서 골프가 정말 재미있게 느껴졌다”며 “예전엔 골프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미처 몰랐다”고 밝혔다. 어려웠던 가정환경 탓에 어렸을 때 ‘생계’를 위해 골프를 했던 그의 과거가 다시 회자되면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

뒤늦게 골프 재미를 느꼈다고 고백했던 이정은이 이번에는 어린 시절과 여러 선택의 순간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2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홈페이지를 통해 ‘아직 남은 나의 길’이라는 제목의 1인칭 에세이를 공개했다.

이정은은 “모든 삶에는 전환점이 있고 선택의 갈림길이 있다. 선택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며 “당시에는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그 여정이 얼마나 큰 차이였는지 깨닫게 된다”고 글을 시작했다.

“나는 9살에 골프를 시작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트럭을 운전하셨는데 내가 4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입으셨다”고 밝힌 뒤 “당시 아버지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수도 있었고 인생을 포기하셨을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셨다”고 돌아봤다. “그때 어렸던 나는 아버지가 결정한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며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정은의 아버지 이정호 씨는 불편한 몸에도 직접 장애인용 승합차를 운전하며 이정은이 국내에서 활약할 때 든든한 버팀몫 역할을 했다.

이정은6. 스포츠동아DB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골프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며 “떠밀려 배우는 기분이었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3년간 골프를 쉬었다”는 이정은은 “15살 때 티칭프로가 되기 위해 골프를 다시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먹고살기’ 위해 티칭프로를 꿈꾸던 그에게 결정적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17살 때. “서울의 유명한 감독님이 학교와 골프를 병행할 수 있는 골프 아카데미 기숙사에 들어오겠냐는 제안을 하셨다”며 “휠체어에 앉아 계신 아버지로부터 떨어지기 싫었고 두려웠지만 움직이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원래 계획이었다면 19살에 모든 것이 편안한 순천 집 근처의 티칭프로가 되었겠지만 선택의 결과 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6번째로 ‘이정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됐다”고 데뷔 과정을 돌아본 그는 2017년 US오픈에 처음 출전해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미국 진출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를 전했다.

2018년에도 KLPGA 투어 2승을 거두고 상금왕에 오른 이정은은 “그때 내 인생의 또 다른 갈림길과 마주했다”고 미국 진출을 두고 고민했던 시기를 떠올렸다. 골프가 아닌 외부 환경 등 다른 모든 것이 긴장되고 두려웠지만 미국행을 결심했고, 결국 지난해 US 오픈에서 우승하며 신인상도 차지했다.

“지금도 영어를 잘 못하고, 신인 때 영어 실력 때문에 기자들에게 미안했다”고 덧붙인 이정은은 “그래서 신인상 수상 연설 때는 3개월 동안 연설문 연습을 했다. 연설을 마친 후 큰 박수를 받았는데 눈물이 날 만큼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뿌듯해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쉽거나 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가치 있는 길은 늘 그렇다”며 “이제 24살 밖에 되지 않은 내가 오래 전에 배운 교훈”이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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