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KBO리그 시절 포심패스트볼(포심)과 슬라이더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투 피치’의 이미지가 강한 투수였다. 포심의 구위가 워낙 뛰어났기에 가능했다. 시속 150㎞를 웃도는 포심은 상대 타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세컨드 피치’인 슬라이더도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타자들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드 피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커브의 비중을 점차 늘린 것도 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강속구 투수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ML)에선 시속 150㎞대 포심과 슬라이더만으로는 살아남기 쉽지 않다. 오랫동안 ML 무대를 꿈꿔왔던 김광현도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쉴 틈 없이 힘과 힘의 대결이 펼쳐지는 ML에선 구종의 다양화를 통해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진가를 보여준 경기가 ML 첫 승을 따낸 23일(한국시간) 신시내티 레즈와 홈경기였다.
이날 김광현은 최고 구속 92.6마일(약 149㎞)의 포심(38개)과 슬라이더(26개), 커브(11개), 체인지업(8개)을 섞어 83구를 던지며 신시내티 타선을 잠재웠다. 여전히 포심과 슬라이더의 비율이 총 77%(64구)로 높은 편이었지만, 커브와 체인지업의 활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2회를 제외한 매회 4개의 구종을 모두 던졌다. 3회 프레디 갈비스, 6회 맷 데이비슨을 상대로는 체인지업을 던져 뜬공 유도에 성공했다.
3개의 삼진을 솎아낸 결정구는 모두 슬라이더였다. 특히 5회 우타자 갈비스를 바깥쪽 낮은 코스의 슬라이더로 루킹 삼진 처리한 장면이 돋보였다. 우타자의 바깥쪽으로 휘는 체인지업 또는 포심을 생각했던 갈비스는 그야말로 꼼짝 없이 당했다. 김광현이 레퍼토리를 늘리며 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덕분이다.
마이크 실트 세인트루이스 감독도 현지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통해 “김광현이 스트라이크 존 상하좌우를 고루 활용했다”며 “김광현은 ‘피치 메이커’다. 투구의 기술을 알고 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광현은 어엿한 ML 선발투수가 됐다. ‘피치 메이커’라는 사령탑의 칭찬이 그 증거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