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오윤석. 사진제공 | 롯데 자이언츠

롯데 오윤석. 사진제공 | 롯데 자이언츠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만족할 선수는 어디에도 없다. 기회가 제한된 만큼 자신의 역량을 뽐내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오윤석(28·롯데 자이언츠)은 바늘구멍을 통과했다. 비단 역대 27번째 히트 포 더 사이클(사이클링 히트) 진기록을 작성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활약은 그의 야구인생 전체의 판도를 바꾸는 짜릿한 그랜드슬램이다.


오윤석은 4일 사직 한화 이글스전에 1번타자 겸 2루수로 출장해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때려내는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했다. KBO리그 역대 27호이자, 롯데 소속으로는 1996년 김응국에 이어 24년만이다. 아울러 만루홈런이 포함된 기록은 이번이 최초다.


2014년 육성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오윤석은 지난해까지 통산 118경기 출장에 그쳤다. 어디까지나 백업 자원으로 분류됐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6월 11경기에서 타율 0.351의 맹타를 휘둘렀지만 우측 햄스트링 부분 파열로 잠시 이탈했다. 8월까지 26경기 출장이 전부였으니 올해도 백업에 그치는 듯했다. 허문회 감독은 시즌 초부터 “플래툰 시스템으로 운영하며 주전 선수들의 페이스메이커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사령탑이 주전 선수들에 적극적으로 기회를 주는 유형이라 더욱 쉽지 않아보였다.

그럼에도 진가를 입증했다. 비단 사이클링히트가 아니더라도 최근 활약은 알토란같다. 오윤석은 9월 이후 20경기에서 타율 0.438(48타수 21안타), 3홈런, 17타점으로 펄펄 날고 있다. 같은 기간 6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유일한 4할대 타율이다. 자신의 역할과 역량을 한정짓지 않고 묵묵히 준비해 만든 결과다. 허 감독도 “비주전일 때부터 준비를 잘했다”고 칭찬했다.

롯데 오윤석이 6일 사직 KT전을 앞두고 사이클링히트 달성 턱으로 피자를 돌렸다. 1군은 물론 2군에도 똑같이 30판씩 전했다. 고생한 동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진심이 담겨있다. 사진제공 | 롯데 자이언츠

롯데 오윤석이 6일 사직 KT전을 앞두고 사이클링히트 달성 턱으로 피자를 돌렸다. 1군은 물론 2군에도 똑같이 30판씩 전했다. 고생한 동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진심이 담겨있다. 사진제공 | 롯데 자이언츠



오윤석은 6일 사직 KT 위즈전에 앞서 선수단에 피자를 돌렸다. 1군은 물론 2군에도 똑같이 30판씩 돌리며 “나도 2군 생활을 무척 오래했고, 기록 후에도 밤새도록 많이 축하해주셨다. 혼자 만든 기록이 아니라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연봉(4000만 원)을 고려하면 부담스러운 금액이지만 진심을 전하고 싶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윤석의 야구인생에 역전 그랜드슬램이 터진 듯하다.

사직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