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기자의 여기는 도쿄] 눈물의 집안싸움, 이보다 슬픈 경기는 없었다

입력 2021-08-02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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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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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도쿄 무사시노노모리 종합스포츠플라자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복식 동메달 결정전은 한국선수들간의 집안싸움이었다. 김소영(29·인천국제공항)-공희용(25·전북은행)이 이소희(27)-신승찬(27·이상 인천국제공항)을 세트스코어 2-0(21-10 21-17)으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4명의 선수들은 모두 눈물을 쏟았다. 선수들의 끈끈함과 파트너십을 모두 엿볼 수 있는 한판이었다.


김소영-공희용, 이소희-신승찬은 나란히 준결승에 오르며 한껏 기대감을 높였지만, 결과는 슬펐다. 이소희-신승찬은 그레이시아 폴리-아프리야나 라하유(인도네시아)에, 김소영-공희용은 천칭천-자이판(중국)에 패했다. 메달을 확보한 뒤 그 색깔을 놓고 맞대결하는 그림(동반 결승전 진출)을 그렸건만, 애석하게도 메달의 유무를 가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의 메달을 놓고 집안싸움을 펼쳐야 하는 잔인한 운명이었다.


경기 당일. 선수들은 최대한 배드민턴과 관련된 대화를 삼갔다. 김소영은 “연예인 얘기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 의식적으로 경기 관련 얘기를 안 했다.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이게(이렇게 맞붙게 된 게) 뭐냐’고 한 마디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오후 1시. 잔인한 집안싸움의 막이 올랐다. 이소희-신승찬은 다소 발놀림이 무거웠다. 네트 앞에서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하다 실점이 늘어났다. 부담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반면 김소영-공희용의 드롭샷과 스매싱 공격은 위력적이었다. 득점 하나하나에 크게 환호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경기는 김소영-공희용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고, 4명의 선수들은 서로 끌어안으며 격려했다.


김소영은 이소희-신승찬에게 “수고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지만, 후배들이 공들여 올림픽을 준비한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이 말이 먼저 나왔다. 이소희와 신승찬도 화답했다. “고생했어요, 언니.”


김소영-공희용이 먼저 믹스트존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소영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있었다. “첫 올림픽에서 메달의 목표를 이뤄 기쁘다”는 소감에 이어 “한국선수들과 맞붙어서 아쉽다”는 말이 나왔다. 승리 요인도 “우리가 좀 더 실수가 없었다”는 것 외에는 밝히지 못했다. 아니, 밝힐 수 없었다.


경기장 밖에선 둘도 없는 친구, 코트 위에선 누구보다 든든한 파트너인 이소희-신승찬도 눈물을 쏟았다. 이소희는 “값진 경험을 했다. 후회 없이 뛰고 나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자책했고, 신승찬은 “(이)소희가 너무 열심히 준비했다. 그 과정을 지켜봤고 알기에 미안함이 크다”고 말했다.




이소희가 김소영-공희용에게 전한 축하의 말에 현장은 또 숙연해졌다. 그의 말이 ‘잔인한 운명’을 모두 대변했다. “열심히 준비했기에 결승전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동메달을 놓고 붙는 게 잔인했다. 오히려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는 모습에 미안하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도쿄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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