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의 민낯 드러난 막장 드라마의 이면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1-11-21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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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조송화. 사진제공 | KOVO

2020도쿄올림픽 후광효과를 한창 누리던 V리그 여자부의 숨겨졌던 민낯이 드러났다. 강력한 팬덤을 지닌 몇몇 인기선수들의 프로의식이 결여된 무책임한 행동, 선수단 내 다양한 헤게모니 쟁탈전, 문제를 인지하고도 방치하거나 해결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아마추어 같은 구단 운영이 고스란히 공개됐다.


IBK기업은행 세터 조송화(28)의 팀 이탈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동안 많은 여자배구선수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짐을 싸들고 숙소를 나갔다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심상치 않다. 첫 번째 이탈 보도 후에도 또 짐을 쌌다는 것은 그 팀 또는 그 감독과는 함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조송화는 감독에게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대화를 거부해왔다. 구단에도 그만두겠다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작정 결근하는 연봉 2억7000만 원의 직장인을 보통의 회사라면 어떻게 처리할까. 계약 위반은 법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지만, 구단은 무슨 일인지 복귀를 설득하고 있다. IBK기업은행의 내부균열은 모든 배구인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요한 사안이다. 조송화뿐 아니라 갑작스레 이탈한 뒤 복귀한 김사니 코치(40)의 행동 역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나갔다.

IBK기업은행 김사니 코치. 사진제공 | KOVO


IBK기업은행의 문제는 지난 시즌부터 곪아온 종기가 마침내 터진 것뿐이다. 지난 시즌 내내 몇몇 선참 선수들이 주도해 감독과 스태프를 비토했다. 모래알 같은 팀워크와 반목이 거듭되는 내부분열 속에서도 그나마 순수했던 어린 선수들과 외국인선수 라자레바 덕분에 플레이오프(PO)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중요한 순간에도 조송화는 훈련을 거부했었다. 당시 “감독과 나 가운데 선택하라”며 항명한 것은 주제넘은 행동이었다. 이 때 구단이 조송화를 설득하기 위해 해줬던 발언이 더 황당했다. ‘감독의 남은 계약기간’을 알려줬다. 이 내용은 모든 선수들이 공유했다.

스포츠동아DB


김우재 전 감독은 PO에 진출하고도 재계약하지 못했다. PO 2차전 때 조송화 대신 김하경을 선발 세터로 투입해 이긴 경기에서 몇몇 선수들의 플레이와 승리 직후 모 코치의 표정을 보면 과연 이 팀이 정말로 이기고 싶어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3차전은 더 무기력했다. 사실상 몇몇 주전선수들이 태업을 했다고 해석될 만한 문제의 장면들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구단은 서남원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하고 문제를 서둘러 봉합했다. 전임 감독을 소모품으로 정리하면서 문제를 만든 선수들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우지 않았다. ‘감독보다 선수가 상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팀에서 선수들이 열심히 할 이유는 없었다. 어린 선수들은 힘 있는 선배의 눈치를 보거나 그 꼴이 싫어서 팀을 떠날 생각만 한다.


도쿄올림픽 4강에 오른 뒤에는 몇몇 선수들이 마치 아이돌처럼 대우받았다. 구단 최고위층은 이들을 따로 불러 따로 많은 것을 챙겨줬다. 그렇지 않아도 감독을 눈 아래로 보는 선수들의 콧대는 더 높아졌고, 이 와중에 이상한 소문마저 나돌았다.

스포츠동아DB


이는 IBK기업은행만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대부분의 팀들도 겪는다. 현재 V리그에선 상전처럼 행동하는 선수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 구단과 감독이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인 숙소생활마저 장악한 이들에게 감독은 물론 구단이 휘둘리는 것이 일상화됐다.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팀 성적을 위해 구단은 외면했고, 감독들은 한탄만 했다. 인기 덕분에 이런 선수들은 팬들로부터 보호까지 받고 있다.


구조적 문제도 있다. 중고교 선수들까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기존 선수들을 능가할 유망주가 보이지 않는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심각한 독과점 구조다. 누구보다 선수들이 이를 잘 안다. 요즘 여자배구의 수준이 떨어진 근본적 이유다. 이런데도 실력 이상으로 많은 돈을 받는 선수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팀을 위한 책임감과 직업윤리 없이 왕 노릇을 하려는 나쁜 뿌리들을 단호하게 뽑아내지 않는다면 여자배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결국 21일 IBK기업은행은 최근 사태의 책임을 물어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을 경질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김사니 코치의 사표는 반려했다. 조송화에게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지만, 회사 최고위층이 연루된 이상한 소문의 주인공을 남겨두는 모양새여서 이날 발표로 모든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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