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대회에서 주장으로서 책임감을 느꼈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어린 시절부터 ‘될성부른 떡잎’으로 평가받았고 실업무대 연착륙에도 성공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태극마크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적었지만, 세계무대에서 강점을 보일 ‘주력’ 멤버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이시온(26·삼성생명)은 어느새 어엿한 한국탁구여자대표팀의 주장이자 에이스로 성장했다.

이시온은 최근 중국 청두에서 막을 내린 제56회 탁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대표팀 주장이자 에이스로 팀을 이끌었다. 단체전으로 치러진 이번 대회에서 16강전에서 ‘난적’ 일본을 예상보다 일찍 만나 아쉽게 입상엔 실패했지만, 주장으로서 제 몫을 해냈다는 평가다.

한국은 4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이시온과 전지희(30·포스코에너지), 김하영(24·대한항공), 윤효빈(24·미래에셋증권), 김나영(17·포스코에너지) 등으로 팀을 구성했다. 그러나 대회 직전 전지희가 왼쪽 무릎부상을 앓았고, 김하영이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사실상 이시온~윤효빈~김나영 3명으로만 대회를 치렀지만, 이시온은 팀내 최다인 8매치에 출전해 4승 4패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의 활약에 대해 오광헌 여자대표팀 감독은 “부상 이슈도 있었고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세계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파워와 작전 면에서는 일본보다 더 나은 면도 있어 전반적인 점수는 70점을 주고 싶다”며 “(이)시온이가 주장으로서 제 몫을 다해줬다. 포어핸드 공격력과 완급만 늘면 더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최근 스포츠동아와 만난 이시온은 “주장으로서 책임감을 크게 느꼈다. 5일(한국시간) 대회를 마치고도 10일까지 현지에 남아 계속 훈련을 했다”며 “돌출러버 라켓을 사용하는 왼손잡이인 니시아렌(룩셈부르크) 등 생소한 유형의 선수를 만난 점은 앞으로 도움이 될 전망이다. 패했지만 일본전에서도 기하라 미유 등 상대들이 일반 오픈 대회보다 긴장한 게 눈에 띄어 멘탈의 중요성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2005년 여수 백초초 3학년 때 취미 형태로 탁구를 시작한 이시온은 2년 후 파주 문산초로 전학을 가면서 본격적인 탁구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었고, 운동이 힘들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탁구가 재밌다는 생각 하나로 앞만 보고 걸었다. 그 결과 2013아시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 대표로 선발됐고, 국가대표로서도 2018년을 제외하면 매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여자단식 세계랭킹도 64위로 국내 선수 중에선 5위다.

그러나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큰 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지난해 2020도쿄올림픽에선 P카드(예비멤버) 선발에 그쳤고, 세계선수권대회도 2021휴스턴대회 여자복식 8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중간중간 WTT 피더 유로피안 서머시리즈 2022 여자복식 준우승 등 유의미한 성과도 거뒀지만, 스스로는 “난 국내용 선수인가?”라는 고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세계선수권 이후 목표를 상향조정했다. 출전 자체가 목표였던 시절을 지나 이젠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서다.

향후 목표에 대해 “지난해 올림픽은 나갈 실력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P카드 멤버로 다녀온 뒤 욕심이 생겼다”며 “세계선수권대회를 통해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도 버티는 법을 익혔다. 슬슬 몸을 힘들게 해야 다가올 프로탁구리그 새 시즌과 국제대회를 잘 치를 수 있다. 늘 그래왔듯이 모든 초점을 상대가 아닌 나에게 맞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