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뮐러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클린스만 감독 선임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제공 | KFA
2022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한 파울루 벤투 전 감독(포르투갈)의 후임자를 뽑는 작업은 내내 시선이 집중됐고, 후보들이 주요 외신을 통해 공개될 때마다 여론이 시시각각 변하며 떠들썩했다.
한국축구 사상 최초로 외국인 전력강화위원장이 된 뮐러 위원장은 앞서 ▲전문성 ▲경험 ▲동기부여 ▲팀워크 ▲환경 등 5가지 선임 기준을 공개하며 적잖은 기대를 모았으나 끝내 KFA는 여러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해 우려를 자아냈다.
그렇기에 뮐러 위원장의 기자회견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18년 여름, 벤투 감독을 선임했을 때에도 적잖은 부정여론이 있었으나 당시 김판곤 위원장(현 말레이시아 감독)이 정확하고 명쾌한 설명으로 ‘우려’를 ‘기대’로 바꾼 바 있다.
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로 금세 바뀌었다. 각종 온라인 채널로 실시간 중계된 질의응답에선 1시간 넘도록 동문서답이 반복됐고, 답답함과 궁금증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오히려 날선 비난, 성토가 줄을 잇는 상황을 맞았다.
뮐러 위원장은 부임 직후 ‘포스트 벤투’ 선정을 위해 박태하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 조성환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이정효 광주FC 감독, 최윤겸 충북청주 감독 등 위원 6명이 포함된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런데 요식행위였다. 단 한 순간도 정상적인 과정은 없었다. 1월 25일 첫 화상 회의에선 뮐러 위원장은 선임 기준을 읊은 뒤 국내 거주, 많은 K리그 관전 따위의 ‘뻔한’ 이야기만 나열했다. 이후 전혀 소통이 없다가 지난달 27일 돌연 2차 회의를 열어 참석 위원들에게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고 알렸다.
반면 이 기간 누군가(?)는 열심히 움직였다. 뮐러 위원장이 ‘우리’라고 밝힌 일부가 1월 12일 61명 후보를 선정한 뒤 23명으로 압축했다. 이어 1월 26일 5명으로 줄여 1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온라인 미팅을 진행했고 2명을 최종 후보로 정해 우선순위인 클린스만 감독을 뽑았다.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팀 신임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렇게 몇몇이 극비리에 부지런히 뛰는 동안 위원회는 철저하게 배제됐다. 대체 후보군이 누구인지, 얼마나 압축됐는지 그저 뮐러 위원장과 ‘우리’만 알았다. 홍명보 당시 KFA 전무(현 울산 현대 감독)의 전폭적 지원 속에 김 전 위원장과 위원들이 수백편의 경기 영상과 각종 리더십 보고서를 보며 후보를 하나하나 줄여나가고 접촉 과정을 공유했던 5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많은 축구 인들이 “애초에 위원회는 들러리였고, KFA는 바람막이나 병풍처럼 세워놓을 사람들이 필요했다. 다시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혀를 차는 이유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또 하나가 있다. KFA는 홍 전무가 떠나고 지금의 새 집행부가 들어선 뒤 2021년 7월 정관 제52조(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를 소리 없이 개정했다. 이 과정에서 아주 예민하고 민감한 내용이 변경됐다. 종전 ‘남녀국가대표 및 15세 이상(U-15) 대표팀 관리를 목적’이란 내용을 “남녀국가대표 및 18세 이상(U-18) 대표팀 운영에 대한 조언 및 자문을 목적‘으로 바꿔버렸다.
그렇게 가장 독립적이고 주도적이어야 할 조직을 한순간에 ’자문‘으로 축소시킨 KFA는 ’오리엔테이션→통보‘라는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감독 선임 프로세스까지 구축했다. 결국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며 김 전 위원장처럼 주도하지 못했고, 자연스레 기자회견에서도 할 말이 많지 않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국제축구계에서 이미 지워진 정몽규 회장 체제의 KFA는 멀쩡한 시스템 파괴로도 또 한 장의 옐로카드를 스스로 줬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