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사리지 않는 롯데 황성빈의 유니폼은 언제나 흙으로 뒤덮여 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왜 실패했는지 모르고 지나가면 실패의 의미가 사라지잖아요.”
43년 롯데 자이언츠 구단 역사상 한 시즌 50도루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2명뿐이다. 지난해까지 롯데 1군 외야수비·작전코치를 맡았던 전준호 해설위원과 김주찬 롯데 타격코치다. 전 위원은 구단 역대 한 시즌 최다 75도루를 기록한 1993년과 1995년(69도루) 2차례, 김 코치는 2010년(65도루) 한 차례 시즌 50도루를 넘어섰다. 그리고 올해 황성빈이 롯데의 ‘대도’ 계보를 이을 태세다.
도루 페이스가 무척 빠르다. 단순 계산으로도 57도루가 가능하다. 황성빈은 23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시즌 30호 도루에 성공했다. 그에게도 데뷔 후 처음이자, 구단에도 2016년 손아섭(현 NC 다이노스·42도루) 이후 8년만이다. 게다가 롯데에서 전반기 30도루 이상도 전 위원(1995년·47도루)과 김 코치(2010년·34도루)뿐이었기에 의미가 더 크다.
●전준호 좇는 포스트 전준호
당초 40번을 달던 황성빈은 지난해 1번으로 등번호를 바꿨다. KBO리그 통산 도루 1위(549도루)의 전 위원을 닮고 싶어서였다. 올해는 한현희가 이 번호를 골라 0번을 달게 됐지만, 전 위원을 목표로 뛰겠다는 의지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자신과 한층 닮아진 황성빈에 대해 전 위원도 “원래 갖고 있는 게 좋은 선수였는데, 올해는 타격뿐만 아니라 투수의 습관을 파헤치고 뛸 타이밍을 재는 모습까지 모두 좋아졌더라”며 뿌듯해했다.
도루뿐이 아니다. 황성빈은 뛰어난 콘택트 능력으로 3할대 후반의 고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주루에서도 리그 최상위권의 추가진루율(28.8%·2위)로 누상을 휘젓는다. 이에 전 위원은 “도루를 하려면 일단 누상에 나가야 하는데, 올해 타격도 뒷받침된다”며 “누상에서도 내가 본 선수 중 누구보다 한 베이스를 더 가려는 열망이 컸다. 갖가지 요소가 두루 성장한 만큼 앞으로 롱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롯데 1군 외야수비·작전코치 시절 덕아웃에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전준호 해설위원.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황성빈은 지난해까지 2시즌 동안 성공만큼 실패도 많이 했다. 도루도 19번 성공에 17번 실패를 경험했다. 롯데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1군에 데뷔한 2022년에는 성공(10회)보다 실패(12회)가 더 많았다. 황성빈은 “성공보다 실패 사례의 자료를 더 자주 봤다. 김평호 코치님도 ‘왜 실패한 것 같으냐’고 늘 물어봐주셨다. 실패해본 사람이 언젠가는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성공률이 높아졌다. 올 시즌 20도루까지는 성공률 100%를 자랑했다. 상대 야수의 무릎에 손이 걸려 첫 실패를 안기도 했지만, 황성빈에게는 이 역시도 좋은 자산이 됐다. 이후 30도루까지도 90.6%의 높은 성공률을 유지했다. 전 위원은 “그동안 겪은 모든 실패와 절실함이 황성빈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힘이 됐다”고 분석했다.
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