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로봇 심판’의 도입에도 특출난 선구안을 자랑하는 LG 홍창기와 NC 권희동, 한화 최재훈(왼쪽부터)에게는 ‘인간 ABS’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아 보인다. 스포츠동아DB
●로봇 vs 인간
장 전 감독이 흥행에 앞장서던 프로야구 초창기와는 달라진 게 참 많다. 이제는 ‘로봇’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한다. KBO가 올 시즌 ‘로봇 심판’으로 불린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을 도입한 뒤로 마치 로봇과 인간이 싸우는 형국이 됐다. 타자들은 실제로 싸워야 할 투수보다 ABS가 만들어낸 존과 씨름하느라 불만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이른바 ‘로봇’의 시대에도 장 전 감독의 발자취를 따라갈 후배는 존재한다. 현시대 KBO리그 최고의 출루 능력을 자랑하는 홍창기(31·LG 트윈스)와 권희동(34·NC 다이노스), 최재훈(35·한화 이글스)이다. 셋의 진가는 ‘눈야구’에서 드러난다. 출루율에서 타율을 뺀 순출루율 부문에서 홍창기(0.120)와 권희동(0.119)은 선두를 다툰다. 규정타석의 70%를 채운 타자로 범위를 넓히면, 최재훈(0.133)의 선구안도 예사롭지 않다.
●인간 ABS
ABS가 설정한 존은 기존과 달리 입체적이고 각이 진 형태다. 그래서 ‘넓어졌다’는 인상을 받는 타자가 많다. 게다가 1㎝ 아래로 미세하게 스치기만 해도 스트라이크가 되니 존의 상·하 모서리를 노리는 투수도 부쩍 늘었다. 189㎝의 홍창기처럼 키가 큰 타자들에게는 높은 코스의 공이 건드리기조차 어려운 불가항력의 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소위 말해 존의 경계선에 ‘묻은’ 공도 스트라이크가 되니 타자들로선 존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현장 지도자들의 볼멘소리도 다 이 때문이다.
그러나 홍창기와 권희동, 최재훈은 마치 ABS와도 유사한 자신만의 존을 설정한 듯하다. 셋의 선구안은 존 안팎의 공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보면 더욱 알기 쉽다. 특히 홍창기는 존 밖의 공에 배트를 낸 비율이 14.9%로 규정타석을 채운 리그 전체 타자들 중에서도 가장 낮다. 심지어 지난해(19.4%·1위)보다도 좋아진 수준이다. 권희동(19.6%)과 최재훈(21.3%)도 리그 최상위권은 물론, 각 팀에서 최고의 선구안을 자랑하고 있다.
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