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ABS’ 홍창기-권희동-최재훈, 스트라이크존 꿰뚫는 고차원의 눈

입력 2024-07-23 12: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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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로봇 심판’의 도입에도 특출난 선구안을 자랑하는 LG 홍창기와 NC 권희동, 한화 최재훈(왼쪽부터)에게는 ‘인간 ABS’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아 보인다. 스포츠동아DB

이른바 ‘로봇 심판’의 도입에도 특출난 선구안을 자랑하는 LG 홍창기와 NC 권희동, 한화 최재훈(왼쪽부터)에게는 ‘인간 ABS’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아 보인다. 스포츠동아DB

‘장효조가 안 치면 볼’이라는 말이 존재했다. 현역 시절 ‘타격의 달인’으로 불린 고(故) 장효조 전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의 뛰어난 선구안을 두고 한 이야기였다. 장 전 감독은 통산 타율도 0.331(2위)로 몹시 빼어났지만, 출루율이 무려 0.427(1위)에 이를 정도로 볼을 골라내는 능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모두 스트라이크존을 확실하게 인지할 줄 아는 정확한 ‘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봇 vs 인간

장 전 감독이 흥행에 앞장서던 프로야구 초창기와는 달라진 게 참 많다. 이제는 ‘로봇’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한다. KBO가 올 시즌 ‘로봇 심판’으로 불린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을 도입한 뒤로 마치 로봇과 인간이 싸우는 형국이 됐다. 타자들은 실제로 싸워야 할 투수보다 ABS가 만들어낸 존과 씨름하느라 불만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이른바 ‘로봇’의 시대에도 장 전 감독의 발자취를 따라갈 후배는 존재한다. 현시대 KBO리그 최고의 출루 능력을 자랑하는 홍창기(31·LG 트윈스)와 권희동(34·NC 다이노스), 최재훈(35·한화 이글스)이다. 셋의 진가는 ‘눈야구’에서 드러난다. 출루율에서 타율을 뺀 순출루율 부문에서 홍창기(0.120)와 권희동(0.119)은 선두를 다툰다. 규정타석의 70%를 채운 타자로 범위를 넓히면, 최재훈(0.133)의 선구안도 예사롭지 않다.

●인간 ABS

ABS가 설정한 존은 기존과 달리 입체적이고 각이 진 형태다. 그래서 ‘넓어졌다’는 인상을 받는 타자가 많다. 게다가 1㎝ 아래로 미세하게 스치기만 해도 스트라이크가 되니 존의 상·하 모서리를 노리는 투수도 부쩍 늘었다. 189㎝의 홍창기처럼 키가 큰 타자들에게는 높은 코스의 공이 건드리기조차 어려운 불가항력의 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소위 말해 존의 경계선에 ‘묻은’ 공도 스트라이크가 되니 타자들로선 존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현장 지도자들의 볼멘소리도 다 이 때문이다.

그러나 홍창기와 권희동, 최재훈은 마치 ABS와도 유사한 자신만의 존을 설정한 듯하다. 셋의 선구안은 존 안팎의 공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보면 더욱 알기 쉽다. 특히 홍창기는 존 밖의 공에 배트를 낸 비율이 14.9%로 규정타석을 채운 리그 전체 타자들 중에서도 가장 낮다. 심지어 지난해(19.4%·1위)보다도 좋아진 수준이다. 권희동(19.6%)과 최재훈(21.3%)도 리그 최상위권은 물론, 각 팀에서 최고의 선구안을 자랑하고 있다.


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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